나는 너에게 뭘까 『데미안』

과연 운명은 있을까?

by 이유신

‘너는 나를 사랑해?’

연인 사이에 사랑을 자주 확인하는 친구를 봤다. 상대 마음을 궁금해하는 건 이해되는데 그 후 대화가 이상했다. 많이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어도 친구는 되물었고 시큰둥한 답이 오자 화를 냈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뭐가 어렵냐고 했다.

항상 비슷한 문제로 부딪히는 커플을 보면서 서로 원하는 게 뭔지 궁금했다. 희한하게 자기가 원하는 말만하면서 상대 말은 듣지 않았다. 서로 원하는 대답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내가 볼 땐 요구하는 방식이 서툰 것 같았다. 서로 하기 싫은 대답을 캐내듯 추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인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한동안 내가 잘하면 인간관계가 잘 될 거라 믿었다. 내가 상대를 좋게 대하면 나쁘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았고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책을 읽은 이유다.

처음 책을 읽을 땐 모든 관계가 긍정적으로 보면 술술 풀리는 줄 알았다. 세상에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될 줄 알았다.

책 속에서 좋기만 하지 않는 세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 책『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어둠의 세계에 묘한 끌림을 받는다.

책『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열 살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겪는 내적 변화와 성장을 다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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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악마를 상상하면 저 아래 길거리에 있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변장을 했거나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냈거나 가설시장 혹은 술집에 있는 모습으로. 그러나 결코 우리 집에 있는 모습으로 떠올릴 수는 없었다. _헤르만 헤세 『데미안』


나는 낯선 곳을 갈 때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마음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편하지만 항상 내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어딜 가든 신경에 거슬릴 만한 한두 사람이 있었다. 그때마다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데미안을 읽고 돌이켜보니 아니었다. 살아가며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 있다. 내게 좋아 보이는 사람도 누군가에겐 나쁜 사람이 될지 모른다. 나빠 보이는 사람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다. 나도 때로는 누군가에겐 악마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두 얼굴 같은 모습을 숨기고 살기에 관계가 유지되는지 모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운명일 수 있고 때로는 악연일 수 있다. 악연이라도 내 힘으로 바꿀 수는 없다. 누구든 스쳐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어둠 속 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았다. 한껏 웅크리고 앉아 불행에 몸을 내맡겼다. _헤르만 헤세 『데미안』


싱클레어가 불행에 몸을 내맡겼다는 문장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문장의 세계가 나와 연결되어 마음을 덜컥 움직였다.

나는 어두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있을 땐 스스로를 놓고 싶을 때가 있다. 우울증이었다. 마치 끝나지 않는 지옥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불행에 몸을 내맡긴다고 실패 한 게 아니다. 내 안엔 어두움과 밝음, 슬픔과 웃음, 불행과 행복 같은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내 잘못이 아니다. 모든 일엔 다 정답이나 이유가 있지 않고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

그동안 스스로를 많이 알게 되었고 내 문제를 극복한 줄 알았다. 인간관계에서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니 사람을 멀리했다. ‘이건 맞고 이건 아니다.’라고 너무 선 그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끙끙대고 고민할 필요 없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고, 가까이 하고 싶어도 멀어진 경우가 있었다.

『데미안』에서 힘들 때 싱클레어를 도와준 친구 데미안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아닐까. 내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볼 수 있는 건 ‘만남’ 덕분이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배울 점이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니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싱클레어가 여러 경험을 한 것처럼 나도 사람을 만나며 알을 깨고 나가고 있다.

나를 둘러싼 인연이 운명인지 종종 생각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나의 운명이다. 누군가와 어떻게 이어지든 결국 모든 끝은 나로 이르는 운명이다.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아.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_헤르만 헤세 『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 출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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