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 리뷰]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1월 3일


꿈은 참 신기하다.


꿈을 꾸는 동안은 지금이 꿈속인지도 모르고 세상 진지하고 긴장하며 꿈 속 모든 것들에 반응한다.

그러나 그 꿈에서 깨어나면, 바로 어딘가에 적어 놓지 않는 이상 즉시 잊어버린다.


나에게 있어 꿈 속 세상은,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는 그런 아름답기만 한 세상이 아니다. 꿈은 현실과 맞닿아 있고, 현실의 행복, 걱정, 연민 등의 감정이 증폭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행복한 경험을 했을 때는 더 행복한 꿈을, 불행한 현실을 살아온 날에는 더 불행한 꿈을 꾸었다.


이 책은 사람들이 꿈을 꾸는 행위를, 꿈의 세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구매하는 행위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그 구매한 꿈은 후불이며 그 대가는 꿈을 꾸고 느낀 감정으로 지불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통해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수많은 꿈 제작자들이 꿈을 만들어 낸다.




‘사람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가?’ 그건 바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제자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든, 두 번째 제자처럼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신은 세 번째 제자에게 잠든 시간을 맡겨서 그들을 돕게 한 거예요, 왜,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에요. 꿈을 꾸지 않고 축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 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 32 페이지

주인공 페니가 달러쿠트 백화점 입사 면접 때 대답한 내용이다. 미래와 과거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이 현재를 더 잘 살게 만드는 원동력은 잠자는 시간과 잠든 사이에 꾸는 꿈이라는 것이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잘 자야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잠을 아예 못 자거나 깊게 자지 못한다. 최근 나도 스트레스가 좀 있어 잠을 깊게 못 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를 설계함에 있어 그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드림 페이 시스템즈 Ver 4.5! 가게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들어 있는 통합 프로그램이야. 특히 꿈값 정산 시스템이 기막히게 잘 되어 있지. 이용료가 비싸지만 돈값을 한단다. 금고와 연동된 자동 정산 시스템을 이용하려면… - 61 페이지

우리 회사 SAP와 E-Accounting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이 꿈의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정산과 기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퇴근 후 곧장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온 나림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의 십년지기 친구인 아영의 새로운 연애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계속 꿈에 나왔다는 거지?” – 111 페이지

이 책은 현실과 꿈의 세계가 번갈아 가며 서사 된다. 현실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직, 간접적으로 잠을 자고 꿈을 꾼다. 이 부분에서 조각나 있는 듯한 현실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독자의 흥미를 이끈다. 아영과 나림은 각자의 이야기로 소개되지만, 이 부분에서 서로가 친구임이 발견되어 독서의 집중도가 확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는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많이 보이는 구성이다. 영웅들의 개별적인 속편들이 먼저 소개된 후, 어벤저스라는 영화를 통해 이 영웅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이 함께 스크린에 등장할 때 관객들은 전율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목적지요? 사람은 최종 목적지만 보고 달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 따위가 아니잖아요. 직접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걸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제 맛이죠. 유명 작가가 되는 게 전부가 아닌걸요. 전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는 게 좋아요. 그러다가 해안가에 도착하든 사막에 도착하든 그건 그때 가서 납득하겠죠.” – 114 페이지

시나리오 작가가 꿈인 나림의 예지몽을 고사할 때의 대답이다. 이 발언을 통해 나림은 자신감과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이면 자신의 가까운 혹은 먼 미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 값을 지불 하고서라도 그 것을 알려고 할 것이다. 미래를 어느정도 알면 그 결과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래를 현재의 연속이며,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보다는 현재의 순간순간에 집중하여 살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미래가 어느 순간 도착해 있을 것이다.


“항상 꿈의 가치는 손님에게 달려 있다고 하셨는데…. 아하, 그렇군요. 손님이 직접 깨닫느냐 마냐의 차이예요. 직접 알려주는 것보다 손님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꿈이 좋은 꿈이에요.” “그렇지. 과거의 어렵고 힘든 일 뒤에는, 그걸 이겨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우린 그걸 스스로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단다.” – 153 페이지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나 공포가 트라우마로 커지는 경우가 있다. 주인공은 이러한 트라우마 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달러구트에게 이 행위의 이유를 물어본다. 이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에게 있어,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하게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 또한, 이별로 인한 트라우마가 지속해서 꿈으로 구현되곤 했다. 이별 후 망가진 내 자아의 방은 완전히 망가졌고, 나는 그 방을 최대한 열심히 정리한다. 그러면 그녀가 꿈에서 찾아와 그 방을 다 망치고는,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내일 또 올 테니 정리해 놔.”하고 떠나갔다. 그럼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고, 그녀가 떠나면 다시 그 방을 다시 처음부터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트라우마가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더 빨리 방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녀의 행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그녀가 찾아오는 횟수 자체가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그녀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트라우마 꿈을 계속 사 꾸며, 자체적으로 이별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이다.


남자는 잠에서 깼는데도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뜨면 눈꺼풀 안쪽의 잔상이 사라질까 봐 아까워서 뜨기 싫었다. 좀처럼 울지 않는 남자는, 양쪽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웅크려서 엉엉 소리 내 한참을 울었다. – 274 페이지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는 타인을 향한 꿈의 예약 배송이 가능하다. 이는 시한부 인생의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보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죽임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부재로 인해 슬퍼할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의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이다. 의뢰자는 꿈의 수신자가 어느 정도 슬픔이 가시고, 본인을 직접 만나더라도 충격이 덜해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 무리가 없을 때 즘으로 배송을 요청한다. 따라서 이렇게 배송이 예약된 꿈들은 달러구트의 사무실에 많은 수량 쌓여 있다.


‘꿈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이라는 말을 많이들 쓰곤 한다. 그러나 꿈 속에서 만난다 한들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작가는 이러한 그리움의 마음을 떠나간 사람이 남겨진 사람한테 꿈을 선물하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심지어 떠나간 사람이 그 꿈의 배경부터 냄새 그리고 행동까지 모두 설정하게 하여, 받는 자는 온전히 그 꿈을 받아드리고 느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내가 보고싶은 사람이 꿈에 등장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꿈을 선물해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그 꿈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커질 것 같다.




오랜만에 인문학의 바다에서 잠시 나와, 재미있는 현대 소설 한 편을 읽었다.


꿈에 관한 판타지 소설로, 마치 해리포터를 읽었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꿈에서 보고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나도 책을 통해 이토록 감동받아 울 수 있는 사람임을 새삼 깨닫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 리뷰] 동물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