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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by 김민규

*작성일 : 2025년 1월 31일


나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것들에 있어 큰 비판의식 없이 곧잘 따라 했었다. 그래서 항상 반듯하고 착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런 이미지가 굳어져서 인지 학년이 바뀔 때마다 매번 반장이나 회장에 선출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개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적인 이정표만 보고 달렸을 뿐, 실제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가 잘하는 것 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심도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원적 동기 없이 어설프게 공부하다 보니, 남들보다 빨리 지치고 그만큼 허무함도 많이 느꼈었다.


나도 유년시절 자신에 대해 심도 깊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았더라면, 지금은 더 나 다운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의 무채색의 모범생보다는 알록달록 색깔이 뚜렷한 날라리로 말이다.




난 문을 닫고 응접실로 나갔다. 선생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분명히 선생이 내게 “행운을 비네!”하고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제발 그 말이 아니기를 바랐다. 나라면 누구에게도 “행운을 비네!”라고 소리 지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이다. – 29 페이지

홀든이 처음으로 어른에 대한 실망과 반감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스펜서 선생은 홀든의 방황과 퇴학의 본원적인 원인을 짚기보다는, 당장의 퇴학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들만 걱정하는 듯하다. 따라서 홀든은 스펜서 선생과의 대화에서도, 학교에서 느꼈던 환명을 느끼고 도망쳐 나와버린다. 특히 행운을 빈다는 이야기는, 자신이 가르쳐야 할 학생에게 있어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지만 난 불을 끄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앨리의 침대에 누워 제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애가 스트라드레이터와 에드 뱅키의 푹신한 차 안에서 단둘이 있었다는 생각만 해도 미칠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날 때마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다. – 70 페이지

홀든의 룸메이트 스트라드레이터는 자신이 예전에 좋아했던 제인과 데이트를 나간다고 하고, 이에 대해 홀든은 혹시나 이 놈이 제인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 봐 초조해한다. 결국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스트라드레이터에게 시비를 걸다 싸움이 일어났고, 체급이 밀리는 홀든은 흠씬 두드려 맞게 된다. 홀든의 제인을 향한 강렬한 질투심과 감정 통제가 원활하지 못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짐을 꾸리면서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다. 가방에 스케이트를 집어넣을 때였다. 그 스케이트는 엄마가 이틀 전에 보내준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내 기운을 쑥 빼놓았다. 스폴딩 운동용품점에 들어가서 점원에게 온갖 질문을 다 하면서 이 스케이트를 샀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또 퇴학을 당하고 만 것이다. – 75 페이지

홀든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최대한 따라가려 애쓰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 미성숙한 아이에게 있어 성숙할 수 있게끔 이끌어줄 어른들이 주변에 없다. 따라서 그는 소설 내내 방황과 이로 인한 우울감을 병행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물에 빠져 죽는 게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숨을 쉬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인 채 배를 움켜쥐고서 욕실로 향했다. – 141 페이지

뉴욕의 호텔에서 모리스에게 사기를 당하고 폭행까지 당하는 장면이다. 홀든은 펜시에서 뛰쳐나와 뉴욕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방황의 나날들을 보내며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잃고, 우울감과 반감이 더더욱 커지는 과정들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이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 하지 않는다. (중략)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 164 페이지

이 사회 속에서, 인간은 결국 신선한 순수함을 잃고 진부한 성숙함으로 변해감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아무리 우리가 순수함을 지키려고 애써도, 결국 주변 환경과 분위기를 조장하는 어른들로 인해 그 동심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전시된 모습들의 영속함과 대비되어, 매번 변화하고 바뀌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환명이 증폭된다.


그런데 정말 웃긴 일은 두 사람이 만난 건 아마 엉터리 같은 파티에서였을 거라는 것이다. 온갖 너저분한 짓을 다하고 나서야 샐리는 그 작자를 내게 시켜주었다. 조지 뭐라는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기억조자 하지 않는다. 앤도버에 다니는 놈이라고 했다. 대단하기 대단했다. – 171 페이지

홀든은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샐리가 세속적 평가기준에 적합한 조지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에 질투심과 반감을 양가적으로 느끼고 있다. 자신이 보기에 스트라드레이터나 조지는 그저 못난 어른들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으로만 보이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제인이나 샐리는 그런 껍데기 같은 모습에 좋아하라 한다. 따라서 어른들의 기준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주류이자 반항아에 가까운 홀든은, 그곳에서 더 큰 회의를 느끼게 된다.


“오빠!” 피비가 나를 부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꼭 감싸 안았다. 정이 많은 아이였다. 아이치고는 너무 정이 많아서 탈이다. 나는 피비에게 가볍게 키스해 주었다. 그러자 그 애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언제 온 거야?” 나를 봐서 몹시 기쁜 모양이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 215 페이지

홀든에게 있어 피비는 유일한 행복의 세상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어떠한 기준이나 잣대 없이 들어주고 솔직하게 반응한다. 그 반응의 원천은 성적도, 학교도, 사회적 지위도 아니다. 사랑이다. 따라서 홀든은 피비와 있을 때 유일하게 따뜻함과 행복을 느낀다. 학교나 뉴욕 거리에서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할 때도 항상 다른 가족이 아닌 피비만을 생각한다.


홀든이 소설 내내 하도 피비만 찾아 대서 그녀가 언제쯤 등장하려나 싶었다. 홀든에게 “오빠!”라고 불렀을 때 마치 그 청량하고 귀여운 목소리가 음성 지원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는 우리 조카가 해맑고 밝은 목소리로 나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틀림없어. 퇴학당한 거야” 피비는 계속 이 말만 되풀이하면서 다시 날 때렸다. 그게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이번에는 아빠가 오빠를 죽이고 말거야!” 피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침대 위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머리 위로 베개를 끌어올렸다. 자주 하는 짓이다. 그 애는 가끔씩 정말 미쳐버린다. – 219 페이지

피비는 순수하게 오빠를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한다. 오빠가 좋은 학교를 졸업하는 것 따위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오빠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따라서 홀든에게 하는 말들도 상당히 직설적이고 한편으로는 자극적이다. 홀든 또한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에 다른 조언보다 그녀의 발언을 더 부드럽게 받아들인다. 그가 부모 또는 선생들과 이런 마음으로 대화했다면 성장의 방향성이 달라졌을까 싶다.


삶에 대한 조언과 위로는 꼭 나보다 오래 살았거나 똑똑한 사람한테서만 얻는 것은 아니다. 되려 피비와 같은 어린아이들이나 키우는 반려 동물을 통해서 받을 수 있다. 심지어 말 못 하는 식물이나 살아있지 않은 돌멩이로부터 얻을 수 있다. 결국 어떠한 구체적인 해법에 앞서,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사랑이 더 중요한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 230 페이지

결국 홀든은 본인과 같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다. 소설 내 홀든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장례이자 꿈을 표명하는 대목이다. 세상에 대한 비판과 불평만 하기보다는, 나와 같은 친구들에 대한 연민과 봉사에 대한 생각이 있어, 그 본성과 마음은 따뜻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을 수 있어. 무슨 소린지 알아듣겠어?” – 250 페이지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국 사람들은 같은 말이라도 그 발언자의 배경과 바탕 그리고 표현방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다년간의 학습을 통해 습득한 방법론적 표현의 기술은, 남들보다 더 명확하고 깔끔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삶의 가치관과는 별개로 교육과 학습은 계속적으로 행하여야 한다.


내가 계속 읽고 쓰는 이유도 이와 같다. 결국 살아가며 변해가는 나의 가치관을, 최대한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도착했다.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난 마친 사람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식은땀까지 흘렀다. 이런 변태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난 바보처럼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스무번 가량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 255 페이지

결국 홀든이 마지막으로 믿고 있었던 엔톨리니 선생까지 그에게 변태적인 행위를 하며, 그에게 있어 어른들의 세상은 혼돈 그 자체가 된다. 그는 어른들에게 본인의 상처와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그에 대한 위로와 진심 어린 조언을 받고 싶어 하지만, 그들의 세상은 차갑고 냉정하며, 심지어 변태적이기까지 하다. 홀든의 유년시절은 나쁜 어른들로 인해 계속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의 조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에 대한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물론 지식적 교육과 그에 대한 물리적인 지원은 필수이다.

그러나 그게 앞서, 부모와 자식 간이 정신적 교류가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신적 유대관계가 밑바탕이 된 상태에서, 함께 진로와 교육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그에 대해 동등한 입장에서의 조언과 상담을 진행한다.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도 더 편하고 부담 없이 다가와 순간의 고민과 번뇌를 털어놓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나의 아이는, 순수함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숙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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