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작성일 : 2025년 6월 1일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음을 사전에 안내드립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解離性正體性障碍, 의학: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란 흔히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으로써 어떤 정신적 충격이 계기가 되어 불안정한 개인의 기억 등의 일부가 해리돼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증세다. 해리성 장애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극도로 희귀한 정신질환으로, 존재의 실질성에 관한 논란도 존재한다. – 위키피디아
소설을 다 보고 이 병에 대에 찾아봤는데, 참으로 무서운 질병이자 장애인 것 같다. 대부분의 원인은 아동 시절의 학대받았던 경험이며, 이를 이겨내거나 버티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다른 자아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 자아의 형태는 꼭 사람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고, 그 숫자도 제한이 없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을 통제하고 행동하는 다른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무섭다.
기욤 뮈소 특유의 빌드업과 반전이 잘 녹아든 작품이었고,
항상 비슷한 형식이라 그 내용이 예상된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내가 살짝 창피해지기도 했다.
큰 깨달음이나 울림은 없었지만, 이동 중 시간 죽이기 용으로는 좋은 책인 듯하다.
내 이름은 아델 켈레르, 그림자 여인이다. – 76 페이지
이 부분을 읽을 당시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결말을 알고 다시 펴보니 소름이 돋는다. 당시에는 ‘그림자 여인은 뭐지?’하고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었는데, 트라우마로 인해 발생한 어두운 자아라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는 작명이다.
아델은 오리아나의 두 번째 자아이며, 그녀 또한 오리아나이다. 그녀는 오리아나의 유년시절 교통사고라는 트라우마에서 태어났으며, 오리아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배경의 인물이다. 여기서 신기한 점은 이 두 자아가 절친 사이이며, 심지어 둘은 첫 만남부터 알고 지낸 서사가 상당히 디테일하며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일말의 추리의 복선을 남겨줬더라면, 더 흥미롭게 독서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 아니다. 그러면 반전의 효과가 덜 했을 수도 있겠구나!
“디 피에트르 부인, 9층 객실 서비스 담당인 아델 켈레르입니다.” – 78 페이지
두 자아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 역시 처음 읽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결말을 알고 다시 보니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게 실제 육성으로 대화한 것일지, 혹은 신체 속에서 상상 속의 소통을 한 것일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아델을 호텔의 가난한 종업원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외부 인물들도 전부 상상의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니 흥미롭다.
이 부분은 마치 내가 올해 초 관람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Confrontation’과 같다고 생각한다. 극 내내 1 신체 1 자아의 형태로 살아가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이 넘버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신체에 두 자아가 서로에 대한 대면을 시도한다. 초 단위로 바뀌는 자아의 극명한 대치와 대조를 표현한 홍광호 뮤지컬 배우에게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아델의 경우와 연관 지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델은 바로 오리아나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또 다른 자아라면?”
“또 다른 인격체라는 뜻입니다.” – 331 페이지
사실 이 대목까지 오느라 너무 오래 걸렸다. 이미 기욤 뮈소의 소설을 3편이나 본 입장으로 대충 소설의 구성이나 반전이 예상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욤이 어떤 식으로 또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하며 반전을 주려나 싶은 심정으로 이전 300페이지를 읽었다.
“또 다른 인격체가 원래의 인격체를 누르고 자신이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를 내비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래의 인격체를 제거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정작 자기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아마도 오리아나와 아델 사이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 334 페이지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실마리가 튀어나온 이후 그 얽힘을 풀어내는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두 번째 자아가 첫 번째 자아를 죽이기 위해 청부 살해 업자에게 자기 자신의 사진을 건네며 살인을 의뢰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소름이 돋는다. 근데 자기 자신의 사진을 건네면서 죽여달라고 하면 업자 입장에서 조금 의아하지 않았을까?
기욤 뮈소의 책은 2022년 군인 시절 처음 접했다. <구해줘>로 시작해서 <종이 여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 나에게 있어 몇 안 되는 다독 작가이기도 하다.
내무반 독서실에 숨죽이며 <구해줘>를 읽던 시절은 아직도 생생하다.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있어 거의 처음으로 독서의 흥미를 알려준 작품이었고, 독서하며 짜릿할 수 있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이 책을 보며 13년 전 그때가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