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6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분교 1학년 교실이다. 아직 앳된 얼굴을 다 벗어내지 못한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있다. 수업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이내 교실은 조용해졌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등장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 며칠이지?”
“7번, 56페이지부터 읽어.”
7번이었던 대식이가 선생님의 엄중한 명을 받고 책을 읽어 내려간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선생님이 번호를 부를 때부터 ‘나를 시키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에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지목을 비껴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 이 상황은 그 수업시간에 모두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해결하지 않고 대충 묻어둔 문제는 꿈속에서라도 다시 머리를 드는 법이니까.
며칠 뒤 수업시간, 선생님은 또 그 지긋지긋한 날짜 타령을 하며 번호를 불러댔다.
“오늘이 며칠이지?”
“13번, 64페이지부터 읽어”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아무 죄도 없는 내게 가혹하게 내려졌다. 모면할 수 없는 상황임을 눈치채고서야 가까스로 작은 입술을 떼었다.
“모.. 모 진 겨울을 이겨 낸...”
눈앞에 보이는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의지와 상관없이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심장 저 아래서 스멀스멀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떨림은 더욱 커졌다. 마치 내 안에의 모든 감각들이 일제히 일어나 북이라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떨리는 음성이 적막한 교실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간힘을 써가며 읽기라는 고행을 마쳤다. 곧 정신을 차리자 이 타이밍만 기다렸다는 듯 부끄러움이 허기진 좀비처럼 달려들어 인정사정없이 나를 물어뜯었다.
어린 마음에도
"신이시여 왜 나를 이렇게 변변치 않은 인간으로 만드셨나이까?"
하고 물었던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순간 교실 창밖으로 몸을 날려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지하수 백 미터까지 땅을 파서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꺼져버리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친구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모두가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큰 약점을 친구들에게 모두 들키고 만 것 같아 좀 전과는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체념했다.
이제부터 헐랭이 같은 존재로 친구들 사이에 남아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결연하고도 초연한 마음이 들었다. 초딩이라는 허울을 갓 떼어낸 아이가 가장 약한 속살을, 그것도 벌건 대낮에 무방비로 들켜버린 그 날의 경험은 마음 속 깊이 각인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내년이면 서른아홉이 된다. 어릴 적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었고 발표 불안증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 회사에 다니며 발표를 해야 할 일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열세 살 소녀가 다시 나와 대중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나약함을 시연했고, 나의 흑역사는 매번 갱신되었다. 그런 밤엔 쉬이 잠들 수 없어 하염없이 허공에 대고 이불 킥을 날렸다.
열세 살의 소녀와 서른여덟의 내가 똑같이 가지고 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꽤 긴 시간 고민해 보았다. 그것은 남들 앞에서 무엇이든 잘해 보이고 싶었던 마음, 누구보다 당당하고 완벽해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다. 그 마음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마음에 큰 북을 만들어 일생을 괴롭히며 따라온 것이다.
사람은 부모님의 뱃속부터 세상에 나와 짧은 시간에 자아와 성격이 모두 형성된다지만, 내 멋대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분명 이 세 가지 이 부류로 나누었을 것이다.
겉도 마음도 반듯해서 인생을 굴곡 없이 사는 사람
외부에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독한 사람
마음이 약해서 좀처럼 편히 살 수 없는 사람.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하는 나는 세 번째 부류에 해당될 것이다. 세 번째 부류에 해당되는 사람은 늘 반듯한 사람과 독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세상의 울타리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 하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나약한 사람으로 살아온 내게도 알게 모르게 굳은 살도 박히고 내공도 쌓인 모양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작은 상자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결함을 누군가 들쳐볼까 불안어 떨고 싶지 않다.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꾹꾹 밟아 방치해 놓고 싶지 않다.
오히려 세상에 드러내 놓고 ‘너를 이해 하마’ 따뜻한 말로 위로해 주고 싶다. 그리고 어릴 적 자신을 미워했던 내 안의 나약한 소녀에게 손을 내밀고 천천히 화해를 해 나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 남은 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딜 가나 목소리 큰 사람, 센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세상, 허위로 무장한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야에 비로소 마음을 놓는 세상이다. 이 지경에 이르니 사람들은 자신의 허점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일생을 살아간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느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 믿느라 숨이 턱끝까지 차면서도 말이다.
나는 이제 무언가 극복하는 일은 모두 훌륭한 것이라고 맥락 없이 손뼉을 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 자신을 옥죄는 어리석은 일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이 살겠노라 선언한다. 남들 앞에서 책 읽기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쫄보 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보살피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에 더 넉넉한 점수를 주는 사람이기로 하자.
사람들은 잊은 채 살아간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일임을. 때로 자신의 약한 부분을 상대에게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진짜 강한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듣는 이 없는 허공을 향해 담담한 고백을 던져본다. 이것은 나약한 사람을 자꾸만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세상을 향해 날리는 나의 경고이자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나는 천하에 마음이 약해 빠진 찌질이, 쫄보랍니다.
그래 봤자 초보여도 인간, 노련해도 인간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