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목전에 둔 시기에는 동료들 얼굴을 마주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사무실 분위기를 ‘주사 과장’과 ‘여시 대리’가 장악하고 있었던 때이기도 하다. 주사 과장은 남다른 술 주정 능력에 수년간 승진의 문 앞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인물이다. 그는 승진만 시켜준다면 윗사람 앞에서 죽는시늉이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여시 대리’는 편한 회사생활을 지향했다. 그의 몸에는 365일 여우의 피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주사 과장이 팀 회의에서 돌발 행동을 한 것이 이슈가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탕비실에서 몇몇 직원들이 모여 ‘주사 과장’에 대한 험담을 했다. ‘여시 대리’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수다맨도 울고 갈 기세였다. 그리고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사무실에서 우연히, 그가 ‘주사 과장’에게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박주사 과장니잉~!! 제가 과장님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진심이예용~!”
콧소리가 잔뜩 섞인 음성이었다. 나는 ‘여시 대리’를 이렇게 규정하기로 했다. ‘가식적인 년’.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사건 이후 팀원들 행동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직원들은 내가 만들어 놓은 판단의 덫에 쉽게 걸려들었다. 기분에 따라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A팀장은 야누스의 후예, 토씨 하나를 가지고 트집을 잡으며 몇 번씩 수정 요청을 하는 B차장은 강박증 환자, 은근슬쩍 다른 팀원에게 일을 미루는 C과장은 게으른 양아치, 뒷짐을 지고 서서 자상한 성인군자처럼 굴지만 누구보다 계산이 빠른 D대리는 비겁한 방관자.
팀원들에게 배역을 붙여놓고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재판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가벼운 죄는 엉덩이를 몇 대 때려주고, 큰 죄는 철퇴라도 내릴 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감지했다. 직장에서 켜진 이 판단 스위치가 퇴근 후에도 꺼지지 않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책임감이 있고 없는지, 똑똑하고 무지한지를 끊임없이 따지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배역은 포청천 뺨치는, 일 중독 판사였던 거다.
그 결과,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나였다. 누군가를 멸시하고 혐오하는 마음은 암세포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이대로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을 겁나 빵빵하게 주는 회사였다. 하지만 내려놓아야 할 때 였다. 추락하는 헬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 내리듯 퇴사를 했다.
돌이켜보면 꽤 긴 시간 나만 상처 받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퇴사 후 한걸음 떨어져 보니 이제야 내가 제대로 보인다. 왜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또는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사람들 행동을 보았을 때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반응했을까? 왜 그들이 내 마음에 드는 행동만을 해주기를 바랐던 걸까?
마셜 B. 로젠버그는 ‘비폭력 대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관과 욕구의 비극적인 표현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 비극적인 이유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욕구를 표현하면, 우리가 걱정하는 행동을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부감을 가져 방어와 저항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판단의 늪에 빠지면 자연스레 적이 많아진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고립되어 홀로 싸워야 한다.
나는 누군가를 판단할 만큼 완벽한 인간이었나.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내 마음만큼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대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남고 싶다. 성숙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글을 마치기 전, 지금 이 순간 지난 시절의 나처럼 누군가를 끊임없이 판단하고 규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 멈춰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것이 바로 건강을 유지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비결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한다.
※ ‘공대생의 심야 서재’에서 글벗들과 ‘비폭력 대화’를 함께 읽고 쓴 글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누구를 위한 차케병인가?'라는 제목으로, 까칠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