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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Dec 05. 2019

언니가 필요해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영웅들' 에게 바칩니다.

열 평 남짓 되는 교실 안에서 두 명의 아이가 마룻바닥을 뒹굴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덩치 큰 향미가 작은 무명이를 손봐주는 것에 가깝다. 급기야 향미의 야무진 주먹이 무명의 오른쪽 눈두덩이를 강타한다. 향미는 싸움에 승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겠다는 듯 무명의 머리채를 한 움큼 잡아 뜯었다.  

   

초딩 교실에서 벌어진 역대급 스케일의 전투였다. 이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 같은 반 친구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비 오는 날 먼지 날리게 맞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실감할 뿐이었다. 그렇게 싸움은 가속도가 붙어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중이다. 그때 교실 뒷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야! 너네 뭐 하는 거야!”      


싸움에 개입한 인물은 고학년 언니들이다. 그리고 딸 부잣집 막내 무명의 넷째, 다섯째 언니이기도 했다. 고함 소리에 뒤를 돌아본 향미가 놀라 무명을 손에서 놓아주었다. 무명은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억울했다. 며칠 전 빌려준 보라색 펜을 돌려달라고 말한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넷째 언니가 성큼성큼 다가와 향미 앞에 섰다. 순간 무명의 눈에 향미가 갑자기 난쟁이처럼 작아져 보였다. 그날 무명이의 펜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향미가 무명이를 인정사정없이 때렸고, 무명의 언니들이 슈퍼 히어로처럼 나타나 무명을 구해줬다는 사실만 남았다.      


그때 언니들은 막내 동생 무명에게 평생 해 줄 수 있는 일을 다 해주었던 걸까? 언니들은 지금 무명이 어디 가서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다녀도 그때처럼 나타나 주지는 않는다. 그녀들도 각자 자신의 가정을 꾸려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무명은 사회에 나와 또 다른 언니들을 만난다. 힘들 때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여주는 언니들을 말이다. 그녀들은 긴말하지 않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 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해낸다. 했던 말 또 하고, 같은 말 또 하고, 촌스러움의 극치를 보이는 패션 스타일을 고수하는 무명이라도 막내 동생처럼 어여삐 여기며 데리고 다녀 준다.

공동체의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 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나에게도 이런 언니들이 있다.


얼마 전 무명이 살고 있는 아파트 앞동 37층에서 서른 살 초반의 여성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래였기 때문일까. 무명은 괜히 감정이 이입되어 며칠간 잠을 설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도 나처럼 언니들이 있었다면 그런 최악의 선택을 했을까?’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는 보라색 쉐도우를 칠하고, 몸빼 바지를 입은 언니들이 등장한다.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동백이는 우리가 지켜야지”

하며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무명의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축구 동호회 회원들이 정희네라는 호프집에 모여

 "후계! 후계!"

를 외치며 맥주잔을 든다. 오빠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지안을 지켜준다.      

차가움으로 가득했던 세상, 지안은 이들을 만나 처음으로 따뜻함을 알게 된다.


돌이켜 보면, 멘탈이 약해 빠진 무명이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공감하고, 무명의 곁에 머물며 찾으면 언제든 나타나 주었던 그녀들 말이다.


 세상이 자꾸만      

“너는 설 자리도 없고 앉을자리도 없다.”     

며 사람들을 가파른 절벽 끝로 몰아세우고, 춥게 만든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진심으로 전하는 ‘위로’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주변을 돌아보고, 누군가에게

 “괜찮니?”  

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  


우리가   사람을 지키는 언니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보통의 영웅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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