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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Feb 07. 2020

친절의 미학

그 많던 친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도톰한 외투와 청바지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꽤나 날카롭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37년 시골 인생을 살아온 내게 퇴근 무렵의 도시 풍경은 아직도 생경하다. 농도가 조금씩 짙어지는 어둠과 신경질적인 자동차의 경적 소리,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귀가하기 위해 조바심 난 사람들이 뒤섞여 도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뒷좌석에 앉아 시골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과 고층 건물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이번 정거장은 킨텍스 1,2 전시장입니다.”      


정거장 위치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버스가 정차하는 듯했다. 신호음이 울리며 버스의 앞문이 열렸고, 그 아래에서 한 아주머니가 기사님께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이 버스 대화역 가나요?”      

(대화역으로 가는 버스 정거장은 반대편이었다.)     


아주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버스 기사 아저씨는 말을 뱉었다.

“아이 씨, 안 가요! 안가!!!”


그의 성난 목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버스는 열을 올리며 출발했지만 이내 붉은 신호 앞에 멈춰 섰다. 창밖으로 조금 전 기사님께 길을 묻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반대편으로 가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빠르게 걸었고, 그 뒤에는 일곱 살에서 세 살 사이로 보이는 세 남매가 엄마를 따라 뛰고 있었다.      

추운 날의 건널목, 어미 오리를 따르는 아기 오리 세마리...


‘아주머니의 질문이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닐 텐데, 기사 아저씨는 무슨 일에 저토록 화가 나신 걸까?’      


내가 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므로 정확한 사유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참 많이 화를 참고, 화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엄마와 거리가 벌어질까 봐 죽어라 달리는 꼬맹이들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집 앞까지 나를 따라왔다.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들러야 할 곳이 하나 있다. 요. 알. 못인 나는 최근 집 앞에 생긴 반찬가게를 들락거리며 생계를 연명한다. 작고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가게 사장님이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     

 

“어머! 오랜만이네! 한동안 왜 안 왔어?”


“아, 네... 그냥 라면만 먹고 지냈어요. 헤헤. (반찬을 고르며), 이거 이거 주세요”     


계산을 마친  반찬 봉지를 들고 돌아서는데  뒤통수를 향해 가게 사장님이 한마디를 던진다.  


“배고플 때 와서 된장국에 밥 말아먹고 가”      


시골 촌뜨기가 일산에 상경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지냈음을 그녀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까? 어둡던 마음에 전구 하나가 , 하고 켜진다.  

반찬가게 언니는 무엇을 남겨 살아가려는 건지 나를 보면 자꾸만 반찬을 공짜로 준다.


‘그래, 세상에는 차갑고 화난 사람들만 넘쳐나는 건 아니지...친절은 누군가의 시든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구나! ’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을 매섭게 얼리기도, 오븐기에서 갓 나온 호빵처럼 따끈하게 데우기로 한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세상 밖으로 꺼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사람이 사람을 반기고,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세상은 어디로 갔을까? 앞만 보며 걸을 수밖에 없도록 날씨가 추운 만큼, 험악한 뉴스들이 TV 화면을 가득 채우는 만큼, 사람들이 알수없는 것들에 쫓겨 조급함에 종종걸음을 치는 만큼, 점점 더 귀해지는게 다름아닌 ‘친절’이라니 씁쓸한 일이다. 


집 앞에 나오면 발 끝에 채일만큼 ‘칭찬’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세상이 오기를. 반찬가게 언니가 자신의 친절을 변함없이 지켜내고, 지금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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