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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Feb 25. 2020

오지랖 80세, 김여사의 말년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2편

어느덧 시골생활 20 차다. 시골 라이프는 여유롭다는 편견을 버려라. 젊은 시절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잘도 잤건만, 나이가 드니 아침 일곱 시면 눈이 번쩍 뜨인다. 아기 같은 표정으로 세상 편히 자고 있는 표정과 다르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끌쪼글한 주름이 얼굴 한가득인 남편을 뒤로하고 거실로 나선다.      


“에옹, 야옹, 야~아옹”

고양이의 수명을 매년 갱신해 세계 신기록을 써내는 달님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구 달님 할망구 밤사이 별일 없었는가?”   

달님이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부엌으로 들어가 온갖 곡물을 섞어 밥을 안친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다시 돌아와 4각 원목 테이블 앞에 다이어리를 펼치고 오늘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소박한 손길이 느껴지는 정다운 부엌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오늘은 김씨네 개 ‘복순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새끼들이 서로 엄마젖을 먹겠다고 한참 경쟁을 하고 있을 때이기도 하다. 어느 한 놈이 지 형제들에게 치여 제대로 젖을 못 먹어서 혹시나 굶어 죽지는 않을지 점검하러 가야 한다.  아침밥을 먹고 뒷집에 사는 홀아비 박 씨에게도 가봐야 한다. 2년 전부터 그의 아침 겸 점심밥을 챙기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오가다 만나면 밥은 전혀 해 먹지를 않는지 얼굴색이 하얗고,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듯하여 점심 도시락을 싸서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박 씨의 부인은 7년 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다. 당시 박 씨 부인의 나이가 오십여덟이였는데, 그 나이에도 불현듯 사랑이란 게 찾아오고 그러는가 보다. 어여 박 씨가 기운을 차리고 살아가야 할 텐데 큰 걱정이다.     


엊그제 소개팅을 시켜준 지수 할망는 여전히 봄날 같은 낯빛을 하고 헤죽헤죽 웃고 있을까? 지난주 시내에 나갔다가 할머니들 사이에서 방탄소년단 저리 가라 하는 인기남 김택연 읍장을 우연히 만났더랬다. 칠십이  되어 가는 나이에도 외모가 어찌나 말끔하고, 웃을 때마다 주변이 환해지는지, 저런 쾌남은 지수 할망구와 엮어주는  딱이다 싶어 주선을 했다. 3  만난  사람은 서로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지수 할망구가 한라봉  봉지를 사들고 찾아온  어제 일이다. 신이 나서 한나절을 떠들고 갔으니  국수를 얻어먹을 일만 남았다. 결혼이 성사되면 나중에 지수 할망을 닮은, 해사한  원피스를   얻어 입을 참이다.    

먹는 것에 욕심내지 않는 건강한 삶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밥을 대충 차리고 남편을 깨운다. 눈을 비비며 나오는 남편의 외모도 김택연 읍장이 부럽지 않다. 그는 20대의 해맑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꽃할배이다. 남편은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는 게 취미다. 어제도 동네 할망구들이 여덟이나 몰려왔다. 그런데 아랫마을에 사는 진주 할망구가 눈에 자꾸 거슬렸다. 사주를 보러 온 사람이 분홍색 한복에 빨간 립스틱이 웬 말이냐. 남편에게 꼬리를 치고 돌아간 게 분명하다. 내면에선 질투심이 한바탕 일렁이는데 태연한척 남편에게 진주할매의 사주는 어떻더냐고 질문을 던졌다.      


“으음... 평범 혀, 그냥 평범 혀”

“평범허긴. 그 할매가 이혼을 세 번이나 하고, 지난달에는 송씨네 사촌 당숙인가 하는 할배하고 또 눈이 맞았다더라. 당신은 그 둘이서 두 달 동안 손잡고 동네를 그렇게 싸돌아 다녔는데 그것도 몰러? 당신 그거 사주 똑바로 보는 거 맞어?”      


난데없이 쏟아져 나온 나의 본심에 남편은 왜 괜히 생트집이냐며 입을 삐쭉 내밀고 눈을 흘긴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 입는 즐거운 나의 집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나의 하루는 동네 사람들의 대소사를 모두 챙기며 쫓아다니느라 바삐 간다. 이래 봬도 만명중 한 명은 이름을 아는 작가가 되어 굶지는 않고 먹고사는데 글을 쓰는 일보다 동네를 쏘다니느라 바쁜 지경이다. 남편은 민망했던지 밥상을 치우는 내게 오지랖 그만 떨고 글이나 쓰라고 잔소리다. 젊은 날의 오지랖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8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어쩌면 내게 '오지랖'이 주는 좋고 나쁜 영향을 모두 소화할 내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 오지랖 넓은 할머니여. 이렇게 타고 난 걸 어쩔껴. 그래두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많이 오겠제. 나 보내는 길에 당신이 외롭지 않으면 그걸로 된 것이여.”   

   

남편은 별소릴 다 한다며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저 그루밍족 할매 또 하루 종일 씻네, 하루 종일 씻어.’ 속으로 흉을 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머리를 정성스레 빗고 오토바이를 부릉거리며 읍내로 나간다.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린다.      


“24시간이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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