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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Jun 16. 2021

책방 일기 21. 06. 15

안물안궁 탱님의 하루를 따라가 봅시다!

12:01 출근길, 출발지인 금릉역에서는 우산을 펼칠 필요가 없었는데


12:25 풍산역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온다. 경험상 비가 오면 책방에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다.  오늘은 조용할 테니 차분히 앉아 일을 봐야지 마음먹고 걸음을 옮긴다.


12:33 책방에 도착하면 제일 첫 번째로 전등과 음악을 켠다. 매일 반복하는 일은 바닥과 책상을 닦는 일. 청소를 하다 보니 꼬질꼬질한 출입문 유리가 눈에 들어온다. 유리 위에 윈덱스를 뿌리고 신문지로 슥슥 닦아낸다.


13:05 싱크대 위 컵들을 정리하고 커피를 한잔 내린 후 노트북을 켠다. 메모장에 적힌 해야 할 일 리스트를 확인한다. 이어 구글 설문지 속 도서 주문서도 확인한다. 오늘은 주문서에 1권, 스마트 스토어에 4권 주문이 들어와 있다. (스마트 스토어나 책방에 없는 책을 주문할 때 손님들이 구글 주문서를 이용한다.)


13:10 콩님이 들어온다. 손님이 아무도 안 와도 콩님과 꿀님이 책방에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사랑스러운 책방 친구들. 콩님은 오늘 오후 3시 기말고사를 볼 예정이란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시험 시간이 제일 싫었는데... 모범생 콩님은 시험 준비를 거뜬히 해낸 듯하다.

서가를 서성이는 완두콩님.

14:00 손님이 없다. 예전 같으면 이러다 망하려나보다 불안이 엄습했을 듯한데 이제는 제법 내공이 쌓였는지 한가한 시간도 좋다. 외출할 찬스가 왔다 싶어 책상 위에 "은행 다녀올게요" 메모를 해두고 콩님에게 보고를 한 뒤 책방을 나선다.


14:20 행선지는 우리은행 후곡마을 일산지점. 공동체 지원사업으로.진행할 마켓 지원금을 받을 통장과 체크카드 개설을 위해 방문한 것. 얼마 기다리지 않아 순서가 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비영리단체 통장 개설에 체크카드 발급에, 인터넷뱅킹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단다. 절차가 복잡한 것인지, 직원이 업무를 느리게 처리하는 것인지 시간은 빠르게, 아니 내겐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15:00 창구는 세 개뿐이고 내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 만큼 대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은행을 빈틈없이 채웠다. 식은땀이 났다. 혹시 책방에 손님이 오지 않는지 불안해 카메라를 켜보니 손님들이 오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속이 시커멓게 탄다는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해가지고"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원망의 목소리 ㅜㅜ.


15:30 은행을 나오니 간당간당하던 휴대폰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다. 나는 휴대폰이 없으면 바보가 되는 길치. 택시도 안 보이고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책방엔 손님들이 오가는데 어쩌지. 지나가는 차들에게 나를 책방에 좀 데려다다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좌절하던 찰나. 신호 대기 중인 차들 가운데 '빈차'라는 불빛이 또렷이 보이는 택시가 서 있었다. 6차선 도로 중간에 나를 구조해줄 희망. 부끄러움은 내팽개치고 냅따뛰어 택시 뒷좌석으로 안착. 기사님은 화들짝 놀랐지만 쿨하게, 빛의 속도로 나를 책방 근처에 내려주시고 떠나셨다.


16:00  내가 없는 사이 콩님이 손님들께 음료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난 정말 나쁜 주인이야) 시험을 잘 봤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스마트 스토어로 보낼 책을 포장하고 있는데 콩님이 밖에서 큰 책 박스 두 덩이를 안고 온다. 택배가 도착한 모양. 엊그제 서가에 채워 넣을 꿈지기들 책을 주문한 탓에 신이나 둘이 같이 책 박스를 뜯는다.(내일 더 많이 올 예정)

16:15 책 구경을 하고 있는데 훤칠한 두 명의 손님이 들어온다. 책방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먼지민님과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친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가시려는 걸 음료 드시고 가라며 붙잡는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와 <명랑한 은둔자>를 놓고 차분히 책 읽으시는 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하다.


16:40 스마트 스토어 택배를 보내고 돌아와 먼지민님께 <살아있다는 >이라는 그림책을 포장해 건넸다. 나는 평소 지민님을 포함한 달걀 부리 마을 홍승은 작가님 식구들 팬인데, 홍작가 님이 최근 그림책에 매료되었기에 언젠가  선물을 하고 싶었다.

17:00 잡무를 처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책 정리를 하고, 택배박스를 정리하고 가시는 손님들을 배웅한다. 그 사이 얼마 전부터 필요한 책들을 메모해와 꼭 작업실에서 구매해 주시는 고마운 손님 두 분이 다녀가셨다. 그림책 10권을 주문하시고, <어리석은 여행자>, <내 안에 나무>를 구매해 가셨다.


17:55 고양시 교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 창작 수업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수업은 최백규 시인님이 진행한다. 작가님은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다. 조용히 들어오시더니 가방에서 일회용 종이컵 세줄을 꺼내신다. 지난번에 내가 선생님들 간단히 이용할 종이컵을 사다 놓지 못했다는 말을 기억한 것이다. 지난번에는 A4용지를 박스로 시켜주시더니 이토록 다정한 시인님.


18:00 선생님들이 수업 착석을 하는 것을 보고 책방을 나온다. 회사 다닐 때나 내 책방을 꾸려가는 지금이나 여전히 칼퇴가 제맛이다.


인스타 팔로워 : 6,027명

매출 : 13만원 (만원단위 미만 절사)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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