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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밍 Nov 19. 2024

짜장면

이유 모를 고집에도 언제나 이유는 있더랍니다.




원래부터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었어,라는 귀여운 말이 있듯이. 현재 우리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일이 말입니다. 항상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손가락 휘리릭 지휘를 하다 보면 바로 문 앞까지 맛있는 음식이 놓이는 시대. 시대에서 아빠는 유독 고집을 부리곤 하십니다, 짜장면은 고로 직접 가서 먹어야 한다, 하시면서요.


다행히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맛이 괜찮은 중국집이 자리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굳이 숯불에 구워 먹어야 맛이 살아나는 고기도 아니고, 싱싱하게 자리에서 바로 떠주는 횟집도 아니고. 짜장면을 먹으러 포근하게 입고 있던 잠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챙겨 신고 운동화까지 신고 나서야 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거든요.


게다가 떡볶이나 족발, 보쌈 그리고 치킨 등등. 다른 맛있는 음식들은 모두 배달을 시켜 먹는데 어째서, 굳이.

짜장면만 배달 기사님의 품에서 맞이할 수 없는지 쉬이 이해가 잘 되진 않았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그랬습니다.

주말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늦은 아침을 맞이해 비몽사몽인 상태인 제게 아빠는 나설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서 말입니다. 방금 일어나기도 했고 솔직히 귀찮음이 너무 앞서서 오늘은 배달시켜 먹는 것이 어떠냐 말씀드리려 했지만, 이미 외투까지 걸치신 상태라 대충 외투를 껴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따라나섰습니다.






한가로웠던 집과는 다르게 중국집은 아주 분주했습니다. 마치 평일 출근길을 연상케 하는 그런 북적임과 소란스러움이 말이죠. 동네 중국집이다 보니 식당 내부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테이블 서너 개가 전부였죠.

그중 널찍한 테이블에 아빠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곤 간단한 주문이 끝이었습니다, 짜장면 두 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이죠.


서서히 잠이 깨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울리는 주문 전화 벨소리, 어렴풋이 들리는 무언가 튀겨지는 기름 소리 등등. 다들 늦잠을 자는 주말에 찾아볼 수 없는 활력이 귓가를 두드렸거든요. 그제야 코로 스며드는 달큼한 춘장 냄새와 고소한 튀김 냄새가 배고픔도 같이 깨워버렸습니다.


언제 나오려나, 생각하자마자 김이 폴폴 나는 짜장면이 테이블에 놓였습니다. 짜장소스와 면이 어우러지도록 젓가락을 들어 슬슬 비비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배달로 시켜 먹는 짜장면은 아무리 빨리 온다 한들 면이 조금 굳어버릴 수밖에 없고 짜장소스는 조금 식어버릴 수밖에 없어서 젓가락을 양손에 야무지게 쥐고 열심히 섞어야 했지만, 테이블에 바로 놓인 짜장면은 젓가락을 한 손으로 잡고 슬슬 비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그만큼 부들부들한 면과 뜨끈한 짜장소스가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습니다.


후루룩. 한 젓가락 입에 가득 넣으니 이전에 먹었던 짜장면의 맛이 어떠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입안에 가득한 뜨끈하고 쫄깃한 짜장면의 맛만으로 충만했습니다. 이래서 짜장면은 직접 와서 먹어야 하는 거야, 입안 가득 짜장면을 넣고 먹는 저를 보며 아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곤 후루룩. 아빠의 입에도 짜장면이 가득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아빠의 이유 모를 고집은 여기서 나왔나 싶습니다. 부들부들한 면과 뜨끈한 짜장소스, 그것을 오롯이 제대로 맛보기 위해 조금의 번거로움을 감내하는. 그렇게 무언갈 감내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취. 뭐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저 짜장면 한 그릇에 비유하기엔 조금 거창한 고집일 수도 있지만, 번거로움을 감내한 짜장면의 맛은 거창하기에 충분했으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젠 이유 모를 고집의 이유를 알았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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