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일을 좋아하고 음식을 사랑하지만 그렇게 까지는 아닌데, 하는 메뉴들이 하나 두 개씩은 있기 마련이죠.
저한테는 오므라이스가 그런 음식 중 하나입니다.
오므라이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식처럼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스스로 돈을 지불해서 먹는 정성까지는 없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까지는 직접 식당에 찾아가 제 돈을 지불하고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게 오므라이스는 어릴 적 종종 일로 바쁜 엄마가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휘리릭 만들어주시던, 퍽퍽하고 그저 그런 맛이지만 엄마가 바쁘니까 먹는 음식정도였습니다. 한창 폭신폭신한 계란이 올라가 있는 오므라이스가 유행이었던 시기에도 굳이 사 먹어봐야지,라는생각이 없었던 그 정도랄까요.
그러다 애인과 두 번째, 세 번째 정도 데이트하는 날이었을까요,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가자고 그러더군요.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초반엔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에 맞추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니 제가 생각하는 오므라이스에 대한 의견은 살짝 집어넣고 군말 없이 함께 먹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기로 한 식당이 오므라이스 단일 메뉴도 아니었기 때문에 애인이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를 먹을 때, 저는 다른 음식을 주력으로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오므라이스와는 전혀 다른 기억으로 말입니다. 계란찜의 부드러움과는 다른 카스텔라 같이 부드러운 식감의 계란이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감싸 안고 약간은 새콤한 하이라이스 소스에 적셔 숟가락으로 한 입 가득 넣으면, 그 순간 바로 혀가 피아노 건반이 되어 부드러운 연주가 시작되는 느낌이랄까요.
숟가락이 계속 오므라이스를 거쳐갈 때마다, 의문이 커졌습니다. 왜 이제야 오므라이스가 맛있게 느껴질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아직 설레기만 한 애인과 함께라서 그런가.그렇다면 아무래도 음식의 맛은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와 그리고 어디서 먹든, 음식의 맛은 굉장히 일시적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기껏 배부르게 먹고 입가심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혀는 이미 그 맛을 지워버린 지 오래니까요. 다음에도 그 음식이 먹고 싶다거나, 다음에는 그 음식을 먹기 싫다거나 하는 마음은 이전의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음식의 첫인상이 결정해 주는 듯합니다.
제게 애인과 함께 한 오므라이스의 기억이 설레고 좋았나 봅니다, 엄마와 함께 한 퍽퍽한 오므라이스의 기억 위에 살포시 계란처럼 덮어질 만큼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오므라이스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아름답게 바뀌었나 봅니다. 그래서 일까요, 머지않아 애인과 또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간 일은, 게다가 제가 먼저 권한 일은, 어쩌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