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마저도 흐릿한, 엄마 아빠의 허리에나 간신히 머리가 닿을까 했던 꼬맹이에게 천국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풍선이 여기를 둘러봐도 저기를 둘러봐도 가득하고,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전부인 놀이공원이나 커다란 테마파크 말이죠.
아무래도 공기부터가 달았던 것 같습니다. 특출 나게 놀이 기구가 재밌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은 다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도 그저 엄마 아빠의 손이 이끄는 걸음 하나하나가 신이 났으니 말입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아침에 도착해선 이제 해가 가장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간이 되었음에도 배고픈지도 모르고 그저 웃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 엄마 아빠가 묻곤 했습니다, 츄러스 하나 사줄까?라고 말이죠.
그때보다 훌쩍 커버린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겠지만, 그때의 저는 아주 단호하게 싫어!라고 했었답니다. 정말 츄러스가 싫어서였다고 하기엔, 지금은 일부러 맛있는 츄러스를 먹으려고 놀이공원을 가는 어른으로 커버린지라. 엄마 아빠한테 먼저 사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무려 엄마 아빠가 먼저 사주겠다고 한 츄러스를 대체 왜 거절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른의 흉내를 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때의 꼬맹이는. 그러니까, 어른인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른들이 막연하게 멋있고 좋아 보이는 때였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한두 살만 나이가 많은 오빠나 언니들이 달리기 하는 모습만 봐도 그저 멋있게 보이던 그런 꼬맹이가 엄마 아빠와 같은 어른이라니, 그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던 번쩍번쩍 빛나는 변신 로봇들보다 어른이 된 스스로가 더 멋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멋있어지고는 싶은데, 과자 봉지도 한 줌에 못 쥐는 손바닥이며 엄마의 걸음에 반의반도 되지 않는 발바닥이 갑자기 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츄러스는 달다며 먹지 않는 엄마 아빠를 말이죠.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입에 물고 살았으면서 츄러스 하나 먹지 않는 척을 한다고 어른이 될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게 엄마 아빠와 놀러 나와 기분이 좋은, 그런 부러운 거 하나 없는 기분 그대로 엄마 아빠랑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었나 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어린애 같았구나 싶었다가도,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막연하게 선망하고 동경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어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가장 처음으로 마주하는 조건 없는 사랑이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젠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 기구 타려고 줄을 서는 일보다 츄러스를 먹으려고 줄을 서는 일이 더 즐거운 어른이 된
저는 그때의 저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엄마 아빠가 사주던 츄러스는 아이스크림보다 더 다디달았을 거라고, 그리고 여전히 달콤한 츄러스가, 진정한 참 어른의 맛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