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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

얼얼한 국물보다 뜨끈한 식구의 정이란.

by 제밍



홀로 즐기는 음식입니다, 우리 집에서 마라탕은.

마라탕을 두루두루 맘껏 즐기는 날은 친구들과 둘러앉아 먹는 날이라던가, 애인과 데이트하다 저녁으로 먹는 일, 요정도뿐입니다. 그렇기에 마라탕이 너무 먹고 싶은 날이어도 배달 어플을 켰다가 껐다가, 음식을 담았다가 뺐다가. 손가락만 바쁜 고민이 한 시간을 넘어가곤 결국 캄캄해진 핸드폰 전원과 함께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먹지 못하지 마라탕을?

고민하다가 깊어지는 허기에 근본적인 물음이 울컥 솟아오릅니다. 혼밥을 못하는 사람이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혼밥 하는 재미를 알기에 주기적으로 혼밥을 하러 부러 집을 나서기도 하기 때문이죠.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집'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집. 혼자 있어도 집은 집이지만 일단 저를 제외한 3명의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3명은 단순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닌 식구,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식구끼리의 규칙이 생겨버린 것 같습니다. "최대한 식구 모두가 함께 맛있게 먹기"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말입니다.

어느 한 명만 만족스러운 식사가 아닌 최대한 많은 사람이 만족할만한 식사, 가족이란 공동체를 이루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그렇게 유별난 규칙은 아닐 것입니다.







해산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해물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저를 위해 해물파전을 만들어주시는 엄마와, 쫄깃한 족발을 더 좋아하시지만 소화가 어려운 어머니를 위해 부드러운 보쌈을 주문하는 아빠. 좋아하는 브랜드가 따로 있으면서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브랜드로 치킨을 주문하는 동생이 자연스레 그러하듯 말입니다.


누구 한 명이 이렇게 해야 한다, 엄포를 놓은 것도 아니고. 그러하지 않는다고 벌금을 낸다거나 미움을 받는 일이 없음에도 함께 식탁에 앉는 일이 자연스럽듯 그렇게 서로의 식성을 염두에 두는 마음이, 마라탕을 주문하려는 제 손가락에 브레이크를 거는 모양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배달 어플을 조용히 끕니다. 물론 먹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마라탕을 즐겨줄 다른 이들과 함께하면 되니까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먼저 앉아 있는 식구들이 있는 식탁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오늘은 마라탕같이 얼큰한 국물은 식탁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넘어가는 밥 한 숟갈 한 숟갈이 가슴께를 뜨끈히 데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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