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숲 Apr 24. 2020

어머니 삶의 우선순위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잃은 마음을 나보다 더 가엾게 여기셨다




산속에 있는 우리 집 베란다 앞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뭇가지도 튼튼하고 아파트 건물이 바람도 막아주어서 새들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그래서 봄이 되면 새들이 종종 둥지를 틀고 아기새들을 키우곤 했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이 곳에 새 두 마리가 찾아왔다. 우리 가족의 최대 관심사는 새들이 추위를 이겨내고 열심히 사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관찰한 새에 대해 한 마디씩 하면서 과묵했던 우리 가족이 대화하는 시간도 제법 늘어났다.



새들이 겨울 추위보다 매섭다는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작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모아서 둥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어미새가 거센 바람을 맞으며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른 귀여운 아기새가 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베란다에 나가서 둥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 새 둥지에 있던 알들이 사라지고 더 이상 새들도 날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산속에 사는 더 강하고 사나운 새가 와서 새들을 둥지에서 쫓아내고 새 알도 깨뜨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이라고 들었지만 정말 속상했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속상해하셨다. 작고 약한 새들이 둥지에서 내쫓긴 것도 안됐지만 새 알을 깨뜨린 것이 더 불쌍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도 가족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속상한 마음도 괜찮아졌고 새 이야기를 더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에게는 새 둥지에 대한 잔상이 꽤 오래 이어졌다. 얼마 후 어머니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날아가는 새를 보았다. 어머니는 그때 약한 새들을 쫓아내고 새 알을 깨버린 강한 새들이 못됐다고 말씀하셨다. 텔레비전에 새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도 비슷한 말씀을 또 하셨다.



어머니는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잃은 마음을 나보다 더 불쌍하고 가엾게 생각하셨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셨다. 자식들이 씩씩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랑을 주셨고, 가정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셨다. 어머니의 마음과 삶의 태도 앞에서 나는 인생을 어긋나게 살 수 없었다.



어제는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운동화를 한 켤레를 생신 선물로 사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워하시는 바람에 한참을 설득해서 가까스로 주문을 했다. 자신을 위한 소비가 익숙하지 않으신 어머니께 죄송했다.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은 천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20대가 처음이라 성숙하지 못했고 30대가 처음이라 낯설고 불안하다. 우리 어머니도 그렇지 않았을까. 나보다 더 긴 세월을 사는 어머니는 나보다 더 많은 인생의 선택을 할 순간이 많았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선순위는 항상 자신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평생 갚아도 갚아지지 않을 어머니의 사랑을 나는 어쩌면 좋을까.



우리 집 베란다 앞에 큰 나무에는 아직도 빈 새 둥지가 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둥지를 볼 때마다 새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도 문득 생각이 난다. 어쩌면 어머니는 항상 내 곁에 있다는 이유로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들에 감사하며 한 번이라도 더 감사함을 표현해야겠다. 어머니를 더 사랑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하고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