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20화

잘못 든 길

실수해도 괜찮아요.

by 염미희

집에서 부대까지 두 시간 반. 대위 1년 차 때는 기차만 타고 다녔는데 차를 산 이후로는 하루씩 휴가를 붙여 3일을 쉴 수 있으면 차를 끌고 집으로 간다. 퇴근하고 바로 가면 4시간. 4시간이 지나고 가면 2시간 반. 금요일 저녁에 하고 싶은 걸 하고 집에 가거나 반차를 쓰고 차라리 일찍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영상도 올리고 강아지들에게 뽀뽀도 해줬다.(웬일로 반겨서) 머리를 감다가 마침 약속이 취소돼서 저녁까지 집에 머무를 수 있었다. 언젠가 연락을 해보고 싶던 선배에게도 연락이 왔다. 네가 편안해졌으면 좋겠어. 아침에 걸으면 약간 선선하고 저녁에 걸으면 약간은 습하던 그때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사실 좋은 기억은 조각이고 전체를 엮은 조각들은 불편으로 정의되었던 때다. 그 작은 조직에서도 얻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꾸 단념하려 했으나 단념하지 못하게 했던 사람들. 그 기간 덕분에 많이 배웠다. 어떤 수업을 듣고는 감명을 받아 긴 글도 적기도 했다. 그 선배를 떠올려보면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자신의 길을 확실히 가는 사람이었다. 멋있는 사람. 내가 따라 할 순 없었던 사람.

당근마켓에서 쿨거래까진 아니어도 외국인을 상대로 나름 좋은 방어율로 네고를 했다. 외국인인데 네고하는 법을 기갈나게 배운 것 같았다. 자꾸 난처하다길래 제가 더 난처해요 시전,, 결국 50까지 깎으려던 걸 54만 원에 방어 성공. 앓던 이 빠진 기분이다. 당근 하는데 주문한 피자가 올라가고 나는 1층에서 네고할 때 그 불편함이란. 저거 진짜 따끈하고 맛있을 텐데. 엘리베이터에서 기타 영상 조회수를 확인한다. 34회. 아무래도 유튜브 측에서 나를 AI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집에 도착. 서둘러 한 조각을 먹었다. 한 조각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아침에 다이어트해야겠어 진짜,라고 말한 게 턱쯤에 걸려있었다. 반조각은 괜찮지 않나, 합리화하고 가위를 가지고 왔다. 조금 더 먹기 위해 고생하는 사람. 다시 조회수를 봤다. 변동 없음. 유튜브로 대성하겠다는 말은 아껴두기로 한다. 출발시각 1830. 가는 길 내내 날이 너무 좋아서 무디 모자 조금 벗겨서 바람도 맞고 자체 콘서트도 했다. 롯데 응원가를 들으면서 갔다. 작년 오산에서 달리기에 완전히 꽂혀있을 때 내내 들었다. 즐겁고 싶을 때마다 들어서 그런지 들을 때마다 설렌다. 전투력이 좀 채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졌다. 야간운전을 무서워했으나 언제부턴가 야간운전을 좋아하게 됐다. 밤운전을 하는데 정면에 달이 보이는 것이다. 공주를 지날 때쯤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가서 달 좀 보세요. 도착했니? 아니 아직 가는 길이지. 뻥 뚫린 도로 위에 솟아있는 달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어디냐 물었다. 공주예요! 도착하면 전화해! 그렇게 신호를 기다리고 좌회전으로 가야 하는 길을 직진해서 가게 되었다. 큰일이네. 잔여시간을 본다. 시간은 똑같다. 킬로미터는 조금 늘었다. 그렇게 직진해서 가다 보니 공산성이 보인다. 공주를 가로지르는 어떤 다리. 능선에 굽이굽이 연결된 노란빛이 가득했다. 낮에는 보기 힘들던 모양새들. 청주에서 H와 함께 걸었던 산성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미 잘 지내지 어쩌고저쩌고. 오키도키. 사랑한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 내 친구. 사랑이 헤퍼서 좋은 순간들. 그래 사랑이 헤픈 것도 좋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한 번쯤 와보고 싶었던 곳을 잘못 든 길 덕분에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집에서 16시쯤 출발해서 공산성 쪽 예쁜 카페를 들러보는 것도 올해 해야 할 일로 적어놔야겠다.

잘못 든 길이어도 가끔씩 또 다른 답을 줄 때가 있다. 떠나고 싶어서 무작정 신청하려다가 못한 템플스테이를 자원봉사로 갔을 때. 버리고 싶어서 떠난 길에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들을 다시 얻었을 때. 이 자리가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할 때 의심하지 말라며 답이 되어주던 순간들. 그리고 오늘. 가끔은 길을 잘못 들어도 좋다. 낭만적이었던 밤도 마무리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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