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지만 안전하지는 않았던 나의 가족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그들에게 감정을 풀기도 했고, 반대로 그들의 감정도 기꺼이 감내해 줄 수 있을 만큼 서로의 무례함이 익숙했었다. 그렇게 익숙한 감정분출의 패턴대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적당한 가면과 잘 단련된 인내심으로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했었다. 어릴 적에는 아무런 힘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내몰렸었다면, 성인이 되어서부터도 같은 틀 안에서 학습한 대로 서로 순간마다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을 분출하며 지내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
그러다 예고 없이 번아웃은 찾아왔고, 불규칙하고 불친절한 번아웃은 시시때때로 반복되었다. 그 뒤로는 우울함의 작은 신호만으로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듯 무기력해졌다. 익숙한 무례함의 패턴은, 사회에서조차 억울하게 몰려지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허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으로 번져버렸다. 좀 선을 넘어 떠밀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도 무례함을 허용해 왔으니 나를 보호하는 방법 따위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의 감정에 갇혀가는 기분이었다.
번아웃이 왔을 때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테다. 사실은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었음을, 그래서 적절하게 대꾸도 해보고 대처도 해보고 싶었음을 표현해보는 사소한 행위 따위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설프게도 나보다 먼저 가족들을 보호해 보기로 했었다. 부모님의 힘든 상황에서 어렸던 내가 파악한 대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대신 찾아봤었고, 형제들의 힘든 상황을 내가 어른인 양 덜어주며 감수해보기도 했었다. 어떻게든 애를 쓰면 하나씩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실제로 효과적으로 해결된 일들도 소소하게 있었다. 일찌감치 생계를 분담한다거나 하는 일은 물론, 가족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상황 속에서 정서적인 보호자 역할까지 하는 경우까지도 많았다. 아마 대부분의 K장남, K장녀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그들에게는 티도 안 나는 사소한 사건의 해결이었지만 나를 위한 길에서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성실했어야 했던 시간을 모두 놓치고 나니 그렇게 애썼던 시간들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졌고, 평범하게 또래들과 겨루어 얻을 수 있었던 기회가 모두 날아갔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스펙을 쌓았던 또래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자신만을 위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허용하고 감당하기로 했던 선택이었기에 별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의외로 내가 어떤 공동체를 합리적으로 이끌어가는, 나만 아는 힘이 길러졌던 것도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견뎌야 했던 짐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웠음을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사소한 결과로만 받아들였던 가족들은, 내가 그들에게 했던 것처럼 이를 공감하거나 깊이있게 고민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애초에 자신만을 위한 길을 확실하게 선택하는 방법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낳았던 셈이다. 당시의 우리 가족들에겐 그 사건들이 전쟁처럼 느껴졌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저 잊어버리고 싶은 사소한 사건이 되어버릴 뿐이었다. 뒤늦게 그들에게 당시의 일들을 다시 꺼내고 그 일을 위한 내 노력들이 고됐음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와는 달리 우리 가족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법을 꽤 잘 터득한 듯 보였고, 가족들을 위해 지난 시간 애썼던 일들은 결국 나만 아는 외롭고 쓸쓸한 가치가 되어있었다. 언젠가는 가족들이 나를 위해서도 기꺼이 애를 써주고 헌신을 해줄 것을 기대했던 것은, 이미 성인이 되어버렸지만 감히 독립을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과한 의존에 불과했다.
내가 일궜던 가치가 그들에겐 무의미할지언정 나에게마저 무색해져서는 안 됐기에 나를 지키기에는 미숙하고 위험한 원가족을 떠나기로 했다. 그들을 떠나면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가치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내 인생의 외길 앞에서, 허무함과 외로움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었다. 이걸 알아채고 벗어나서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