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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널 G Aug 21. 2021

갑천누리길 메타세쿼이아 풍경 셋

[차철호의 #길] 자전거 탄 풍경, 장태산&노루벌

비는 그쳤다. 많은 비가 예보됐었는데 다행이다. 구름은 잔뜩 벼르고 있다. 촉촉한 대기에서 금요일 냄새가 난다. 비가 더 오려나, 창 밖을 바라보는데 스피커에서 들리는 노래.


그치지 않는 비는 없잖아, 
언제나 햇살일 순 없잖아. 
부딪치며 깨달아가는 삶이란 그런 거야. 
가야 할 길 있기에 헤매던 날들, 
꽃처럼 피우려고 모질던 바람, 
아픔을 겪어야 시작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지금 아프다면 너의 계절이 오는 거야, 
거친 바람은 그렇게 꽃을 피운다. 
(신승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중에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다. 갑천 물길 따라 남쪽으로. 갑천누리길 타고 갑천친수구역(갑천 1블록, 2블록 아파트 예정지-도안호수공원 예정지-갑천 3블록 트리풀시티 아파트) 지나 정림보→상보안→노루벌→흑석유원지(수영장버스정류장)→흑석네거리→기성초등학교 뒷길 통해 장태산자연휴양림으로 달린다. 지난 겨울과 봄 그 길에서 만났던 메타세쿼이아 풍경 셋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1. 갑천누리길

계절 변화는 늘 신비롭다. 안구정화의 힘, 그래서 자전거 산책은 운동이라기보다 힐링이다. 짙은 향기가 지배한 갑천자전거길. 비온 뒤여서 시각도 후각도 수준급이다. 갑천 3블록 아파트 근처 도안 억새갈대숲 역시 초록초록한 레이아웃으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정림동/가수원동 권역을 지나 도심을 벗어나면 초록향기는 더욱 진해진다. 괴곡동 둑방길은 오늘도 평화롭다. 금계국 흐드러진 길과 하늘빛 품은 갑천은 맑은 수채화, 그 위로 싱그러운 향기가 훅훅 날아온다. 상보안유원지 지나 노루벌로 향한다. 그리고 곧 첫번째 메타세쿼이아 풍경을 만난다.


#2. 휴식같은 친구

상보안유원지와 노루벌둔치 중간쯤. 갑천 물길 따라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해 있다. 많지는 않다. 길지도 않다. 그래서 더 정겹다. 지날 때마다 휴식과 위안을 주는 쉼터. 이 길의 품에 서면 그랬다. 지난 겨울 이 길은 참 외롭고 무거웠다. 어쩌면 내 몸과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겨울바다를 노래하는 김현식 목소리가 들릴 듯했다. 여름은 확실히 풍성하다. 색도 향기도 여유롭다. 초록으로 물든 산과 길 사이 갑천 물빛도 초록의 향연. 이어진 데크 길 따라 갑천의 바람이 지나간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살짝살짝 하늘색이 보인다. 자전거 멈추고 물 한 모금, 출발한 지 40여 분, 5.5㎞ 왔다. 노루벌 둔치에 들어선다.


#3. 노루벌 
오늘도 캠퍼들이 먼저 맞이한다. 캠핑카도 많이 보인다. 텐트도 많다. 캠핑명소로 유명해지긴 유명해졌나보다. 둘러앉아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 물놀이 하는 사람들, 물고기 잡는 아이들….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사람과 공존하는 자연도 좋지만 유명세(有名稅)는 경계해야 한다. 노루벌은 청정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반딧불이 3종이 모두 출현하는 청정지역이다.


다리 건너 노루벌 적십자생태원으로 향한다. 구절초와 반딧불이를 기본 테마로 하는 노루벌 적십자생태원은 서구와 대한적십자사대전세종지사가 협업, 지난 4월 개원했다. 유아숲체험원 놀이터, 반딧불이 서식지 복원 등 자연 체험과 휴식·치유 공간을 조성했다. 오늘 두 번째 메타세쿼이아 풍경을 만날 차례다.


#4. 비밀의 숲

"이렇게 좋은 곳을 왜 몰랐을까? 안 알려져서 그렇지, 알려지면 사람들 많이 오겠다." 먼저 온 커플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비밀의 숲. 그동안 나는 그렇게 불렀다. 노루벌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바로 앞의 이곳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이 알려져서 사람들 많이 오는 것을 바라진 않는다. 조용한 메타세쿼이아숲으로 오래오래 남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지난 겨울에도 신비로운 풍경이었지만 역시 여름이 내뿜는 에너지가 이 숲과 잘 어울린다. 숲은 꿈꾼다. 노루벌의 반디불이와 갑천의 별빛과 구봉산의 깨끗한 바람이 오래오래 지켜지길.


#5. 유유자적 자.탄.풍

노루벌에서 나와 갑천 따라 달리다 보면 건너편엔 호남선 기차가 달린다. 장평보유원지와 흑석유원지 사이 길에서 자주 기차를 만난다. 오고가는 기차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흑석리역을 발견한다. 오래 전 잊힌 간이역 흑석리역. 하지만 머지않아 부활한다. 2024년 충청권 광역철도 1단계가 개통되면 다시 온기 가득한 도시철도역으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기차가 지나가네, 갑천 건너 수풀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네. 기차 소리 들리시나요?
흑석네거리 지나 매노천 따라 달리는 유유자적 갑천누리길.

흑석네거리 지나 갑천누리길은 계속 이어진다. '자전거 좀 탄다'는 선수들은 아스팔트로 달리지만 나는 뒤편 갑천누리길로 달린다. 아스팔트로 달린 적도 있지만 매노천 따라 호젓한 길 유유자적 달리는 맛이 더 좋다. 무엇보다, 안전하다.


#6. 장태산자연휴양림
흑석네거리에서 30분 정도 달리면 드디어 장태산자연휴양림 입구.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터널이 열린다.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얕은 오르막이었다가 점점 가파르게 바뀐다. 터벅터벅 걸을 때와 다른 맛이 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 자전거 탄 풍경은 한 편의 파노라마다. 새 소리와 싱그러운 향기의 초록세상은 그렇게 나를 품는다. 산림욕장 나무그늘 아래서 물 한 모금 먹고 출렁다리 위 조망쉼터로 향한다. 습도가 높은 오후 비는 올 것 같진 않다. 덥다. 가볍게 올랐던 그 길에서 오늘은 땀 꽤나 흘리고 심호흡을 한다.


내려다 보는 풍경, 지난 봄과는 확연히 다르다. 출렁다리와 스카이타워는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있지만 숲과 나무들은 많이 바뀌어있다. 색깔, 덩치, 그 위를 지나는 바람의 냄새도. 출렁다리와 스카이웨이를 걷는다. 빙글빙글 돌아 오르면 스카이타워의 깨끗한 바람이 마중 나온다. 360도 탁 트인 스카이타워 전망대에서 이곳저곳 짚어본다. 메타세쿼이아숲은 살랑살랑 여름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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