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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널 G Dec 04. 2021

10월, 대전 단풍 라이딩

갑천&탄동천 타슈 소확행

오늘따라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엑스포광장에서 만난 지 1시간이 지났는데 자전거를 타도, 한밭수목원을 거닐어도 그닥 표정이 밝아지지 않네요.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지만 말을 꺼내어 묻지 않고 싶네요.


"타슈 타고 엑스포광장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볼까?"

별 효과 없을 거 같지만 제안합니다. "어디로?" 그녀, 예상대로 짧고 낮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멀지 않지만 조용하고 가을정취를 제대로 만끽할 코스가 있지." 끄덕끄덕, 괜히 미안했는지 단박에 동의하고 타슈스테이션을 찾습니다.



#1. 갑천  


엑스포다리를 건너 왼쪽 자전거도로로 내려서서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각, 그녀가 갑천 쪽을 가리킵니다. 자전거도로 안쪽 데크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는 손짓, 잠깐 내려서 갑천 물길 쪽으로 다가갑니다. 이쪽저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뒤쪽엔 조금 전 건너온 엑스포다리가 우아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고, 앞쪽엔 가을햇살을 등진 억새와 갈대가 바람의 노래를 부르고 있군요.


"그렇게 많이 봐온 갑천인데..." 

그녀가 말문을 엽니다. 몇 모금 물을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늘 보던 갑천인데, 이곳에서 보는 모습은 또 다르네." 휴대폰을 꺼내 갑천풍경을 찍는 그녀, 그는 안도의 숨을 마십니다. 그리고 사진 찍는 그녀의 모습을 찍습니다. 그녀의 사진 찍는 모습은 멋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화보, 그 자쳅니다.



#2. 탄동천  


조금만 더 가서 대덕대교 아래를 통과하면 갑천과 갈라져 흐르는 작은 하천이 보입니다. 탄동천입니다. 탄동천을 따라 살짝 올라서면 국립중앙과학관이 나옵니다. 과학관 정문 앞을 지나 정문 오른쪽에 나있는 길을 따라 갑니다. 이 길은 지난 봄에 벚꽃구경 하러 왔었던 길이지요. 왼쪽으론 과학관에 나들이 온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오른쪽엔 탄동천의 물소리와 물새소리가 들립니다. 탄동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대전교육과학연구원과 대전교육정보원 앞 산책길을 따라 페달을 밟다보면 벚꽃명소로 알려진 화폐박물관 앞 '탄동천 숲향기길'을 만납니다.


탄동천 숲향기길에 이르자 그녀가 잠시 걷자고 하네요. 타슈스테이션이 바로 앞에 있어서 타슈를 잠시 반납한 뒤, 숲향기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우리 올 봄에도 여기 왔었었나?" 그녀가 벚꽃소풍의 기억을 더듬습니다. "물론 왔었지. 낮에도 오고 밤에도 왔지. 밤 조명이 좋아서 한참 밤바람 맞았던 거 같은디." 살짝 미소를 띠는 그녀, 그도 히죽 웃음을 짓습니다. 봄을 닮은 그녀의 미소가 오늘 유난히 눈부시군요.



#3. 그녀의 웃음소리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다시 페달을 밟으며 그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점점 가을빛 진해지는 가로수 옆을 달리다 보면, 페달 소리는 휘파람처럼 신이 납니다. 거의 모든 길이 자전거 타기 편한 길인데, 목적지인 사이언스 대덕종합운동장 도착 바로 전 천변 자전거길에서 한 번의 롤러코스터를 만납니다. 내리막길이 먼저여서 내려가는 탄력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녀 역시 머리카락 날리며 콧노래 부르며 달립니다. 다행입니다. 그녀가 다시 웃게 돼서. 그렇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는 그녀의 웃음소립니다.



  #4. 기댈게  


한창 가을을 맞고 있는 사이언스 대덕종합운동장에 들어섭니다. 나무와 숲, 숲길이 많은 이곳은 가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이지요. 한적한 바람과 푹신한 낙엽길이 유혹합니다. 숲이 품은 벤치도 많아서 '쉬었다 가라' 속삭입니다. 그와 그녀, 벤치에서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한참 말없이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쉬고 싶었어 기대고 싶었어

고달픈 내 하루에

덩그러니 놓인 빈 의자 위에

그냥 잠깐 앉아 쉬고 싶었어

잠깐 니 생각에 숨 좀 고르면

한참은 더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니가 있어서 기댈 수 있어서

도착하면 반기는

너의 얼굴 떠올릴 수 있어서

돌아보면 꽤나 멀리 잘 왔어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지만

가는 게 맞대 다 그런 거래

변해가는 나를 봐주겠니

나도 널 지켜볼게 혹시 지쳐가는지

어떻게 항상 행복해

미울 때 지겨울 때도

저 깊은 곳에 하나쯤 믿는 구석에

웅크린 채로 견뎌

등을 맞대 보면 알 수 있어

우린 서롤 기댄 채 살아가고 있음을.

(윤종신 기댈게)


그녀가 말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기분이 좋아졌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한참 거닐던 그녀와 그는 다시 타슈 앞에 섰습니다. 그녀가 묻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예상치 못한 물음에 그는 조금 놀랐지만 이내 웃으며 대답을 합니다. 어쩌면 이미 계획이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자전거 더 탈 수 있지? 갑천 따라 도안억새숲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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