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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봄을 떠나 보내는 마음

by 요아킴

사계절이 분명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계절별로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각기 다르다. 여름은 세상의 에너지가 폭발하며 만물의 성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절이며, 가을은 펄펄 끓는 여름의 기운이 다하며 열매의 열매를 맺는 시간이다. 겨울은 한 해의 활동을 정리하며 차갑게 얼어버릴 세상에서 모두가 긴 휴식을 보내는 때이다. 그리고 봄은 잠들었던 모든 존재가 기지개를 피면서 다시 소생하는 생명이 부활하는 계절이다. 5월의 둘째 주, 지금은 간지러운 봄바람이 잠들었던 삼라만상을 깨우며 소생의 입김을 모두에게 불어주는 나른하면서도 따사로운 시간이다.


나는 봄이 좋다. 봄에 태어나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봄은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그런 시간이기 때문이다. 새순이 돋아오는 것을 보면서 긴 겨울의 움츠러듦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다시 확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얀 목련이 갑자기 피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곧이어 노란 개나리의 손짓을 본다. 만발한 벚꽃에 감탄하기가 무섭게 비처럼 내리는 꽃잎을 맞으며 봄이 지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산과 들을 물 들이는 진달래에 흠뻑 취하기가 무섭게 여름의 시작을 느끼면서 짧은 봄이 지남을 후회한다.


계절 중에 봄이 항상 아쉽고 짤게 느껴지는 이유가 봄이 극성스러운 겨울과 여름 사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과 여름은 개성이 뚜렷하다. 삼라만상을 얼어붙게 하는 동장군은 모두를 잠들고 쉬게 만든다. 겨울 앞에서 저항할 존재는 아무도 없다. 식물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최대한 에너지를 아낀다. 동물은 깊은 동굴 속으로 피하고 긴 잠을 청한다. 겨울에 대항하는 존재에게는 죽음만 있다. 겨울은 어쩌면 신이 피조물에게 강제로 내리는 휴식일 것이다.


여름은 그 반대이다. 강렬한 햇살과 숨막히는 더위는 모두에게 빨리 결실을 위해 뛰라는 재촉과도 같다. 식물을 열매를 맺기 위해 한껏 광합성을 하고 수분을 빨아들인다. 동물은 맹렬한 더위 속에서도 성장과 번식을 위해 들판을 누빈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겨울과 여름 속에 낀 봄은 무서운 큰 형과 정신없는 동생 사이에 낀 둘째와도 같다. 여름과 겨울 사이의 가을은 오히려 느긋하다. 여름의 부산함을 털고 한숨 돌리며 휴식의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은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은 것 같은 해탈의 미소를 보낸다.


계절의 네 형제 가운데 봄이 가장 애잔하다. 존재감도 떨어지며 성격도 유순하다. 사람들은 봄을 가리켜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시간이라고 부르지만 내게는 봄은 극성스러운 형제들 사이에 낀 존재감 없는 둘째의 모습이다. 너무 순하다. 강한 존재감이 없기에 사람들은 봄을 겨울과 여름 사이의 짧은 전환기로만 본다. 하지만 내게는 봄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봄이 없다면 얼어붙은 겨울과 끓어오르는 여름의 급변 속에서 우리는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 봄은 냉탕과 온탕의 급한 변화에서 우리에게 적응할 준비를 하게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제발 봄이 짧다니, 봄은 온 듯 간다는 말로 우리 착한 봄을 실망 시키는 말은 하지 말자. 봄은 항상 제 몫을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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