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죽었다.
작년 12월 말, 갑자기 쓰러졌던 친구는 여섯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지난 일요일 오후, 숨을 거뒀다. 그리 멀지 않은 요양병원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뜨기도 하고 숨을 정상적으로 쉬면서 심지어 코까지 골면서 침대를 지키던 친구였다. 직장 때문에 지방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친구는 병원 몇 곳을 돌다 한 달 만에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그 요양병원에서 계속 잠 아닌 잠을 자다가 먼 길을 떠났다.
처음 병문안을 갔을 때 잠자듯 누워있던 친구의 귀에다 계속 말을 걸었다. 일어나라고, 빨리 눈을 뜨라고, 같이 소주 한 잔 하자고. 그런데 그 친구는 반응이 없었다. 사실 반응이 완전히 없던 것은 아니었다. 눈을 뜨기도 했고 눈동자도 움직였다. 상주하면서 간병을 하던 중국 동포 아저씨는 옆에서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무심히 내뱉었다. 별 의미 없는 본능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참 어이없고 슬펐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딱 30년 전 신입사원으로였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기 위해 연수원에서 만난 그는 유난히 얼굴이 희고 동그랬는데, 마치 귀여운 인형을 보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그 웃음에 어울리는 경쾌한 성격 탓에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참으로 호인이었다.
입사 동기들 중에서도 특별히 나와 친했다. 물론 그 친구는 모두와 친했고 나는 그보다 성격이 까탈스러워서 모두 하고 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 그는 통하는 점이 많았고 여러 면에서 많은 교감을 했다. 때로는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좀 모나고 비판적인 말을 내뱉어도 그는 그런 나를 받아주며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시했다. 참으로 너그럽고 마음이 넓었다. 둥글둥글한 성격 못지않게 총명하고 예리한 판단력이 있었기에 승진도 잘했다. 앞날이 창창했던 그런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50대 후반이라는 요즘 기준으로 한창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친했던 입사 동기들이 모였다. 그를 기억하며 옛날로 잠시 돌아갔다. 여섯 달 동안의 식물인간 상태를 겪은 가족들은 허탈하고 힘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서, 어쩌면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라서 그랬는지 겉으로는 덤덤한 모습이었다. 물론 가족을, 그것도 인자하고 성실했던 가장을 잃은 그들의 마임이 무너지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리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아빠를 꼭 닮은 딸은 서너 달 전 혼자 병문안을 갔다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창백한 그녀는 두 번째 보는 아빠의 친구에게 아는 척을 했다. 엄마와 아빠를 반씩 닮은 아직 20대 초반인 아들은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아빠의 부재는 이제 현실이다.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주여, 저들의 영혼을 돌봐 주십시오. 속으로 기도했다. 남편을 잃은 모대학 교수인 부인은 20여 년 만에 만났지만 나와 서로의 얼굴을 기억했다. 강해 보이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낙심 그 자체였다. 간단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더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친구는 그런 소중한 존재들을 남기고 무심히 떠났다. 나쁜 녀석.
그와는 정말 많은 추억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나는 일은 함께 야구장에 갔던 일이었다. 라이벌 두 팀을 각자 응원하면서, 몰래 숨겨 들어간 소주를 마셨다. 그냥 마신 것이 아니라 각자 응원하던 팀이 안타 하나를 맞을 때마다 숨겨간 팩 소주를 한 모금씩 마시는 그런 내기였다. 내가 응원하던 팀이 경기 후반에 갑자기 안타를 몰아서 맞았다. 그리고 나는 취했다. 야구장에서 술 취한 참으로 진상 관객이 됐다. 인사불성에 가까운 상태로 친구의 부축을 받고 겨우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필름이 끊어졌다. 또 한 번은 둘이 술을 잔뜩 먹고 내가 혼자 살던 원룸에서 같이 잤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속을 달래려고 라면을 먹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같이 출근하다 운전하던 내가 구토했다. 참으로 황망한 순간이었지만 그는 나를 도와 오물을 치우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주로 술과 관련된 추억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그와 나는 가깝게 지냈다. 그런 그가 이제 없다.
50 후반이 되니 벌써 주변에 여러 사람이 세상을 등졌다. 주된 이유가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이다. 심장에 이상이 오면 전조증상이 있다고 하는데, 잘 못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무심히 넘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섭다. 10년 전 아끼던 후배가 배드민턴을 치다 갑자기 쓰러졌고 그 길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동안 나도 심장이 이상한가 하는 의심도 들었고 순간순간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더 되풀이되자 무심해졌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일을 겪고 나니 또 겁이 난다.
더는 친구를 못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그립다. 그리고 이 소중한 삶을 살면서 하루하루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철이 든다.
친구야, 보고 싶다. 너는 분명 천국으로 가고 있을 거다. 먼 훗날 거기서 다시 보자.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야구를 응원하자.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