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눈이 많은 겨울이다.
겨울의 첫눈이 좀 과하다 싶었는데
겨울의 끝자락에서도 눈이 많다.
전주라는 낯선 곳에 온 지도 3주.
옛말에 타향은 산 설고 물 설다고 했는데
모든 것들이 표준화되고
어디를 가도 다 비슷비슷해진 현대지만
그래도 어딘가는 어색한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사람도 환경도 모두가 아직은 좀 익숙하지 않네.
전주는 일단 산이 안 보인다.
동쪽으로 또 남쪽으로 멀리 산들이 보이지만
사방을 둘러 이렇게 산이 멀리 있는 넓은 들은 처음이다.
기후도 온순하기 그지없다.
매일 일기예보에서 전북지방의 큰 눈 경보를 알리지만
이는 바닷가 부안, 군산과 산 너머 진안, 무주, 고창의 일이고
전주는 눈발이 조금 흩날리다 말다 하는 수준.
원래 전주의 뜻이 “온전한 고을”이라는데
풍광도 기후도 사람도 온순하다.
갓 3주를 얹혀살고 있는 나도 조금씩 온순해지는 느낌.
꽤 매력 있는 고장 같다.
사택의 밤은 고요하다.
혼자뿐인 아파트는 적막하고
사람들이 온순한 고장이라 그런지
그 흔한 층간 소음도 없고
아파트 단지 전체가 조용하기만 하다.
환경 적응이 아직 완전치 않아 피곤한 날들이 이어지기에
썰렁한 사택도 조금씩 집처럼 느껴진다.
고요한 밤이면 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지나간다.
아쉬웠던 기억들 앞으로의 계획들 모두가 소용돌이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뇌리를 스치는 것들은
그리운 사람들이다.
낮까지는 맑던 하늘이 저녁이 되자 돌변했다.
온순하던 전주 하늘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눈을 뿌린다.
주변 동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양이지만
창밖으로 눈이 쌓이는 게 보인다.
홀로 앉는 사택의 또 하나의 밤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