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에너지법 제정 목표 달성을 위한 제언
이 시대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선택이다. 아니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다. 에너지 전환이란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로 바꾼다는 말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탄소중립, 즉 지구상으로 배출하는 탄소가 0이 되는 세상으로 바꿔 나간다는 말이다. 석탄을 이용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아직까지 사용하는 에너지의 70% 이상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화석연료에서 얻고 있다. 우리가 배출한 탄소가 대기권에 쌓여 지구를 온실처럼 만들고, 그 결과 지구온난화가 일어남으로써 결국 심각한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위기, 기후위기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탄소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석탄과 석유, 그리고 가스 같은 화석연료의 위험성은 모두가 알기에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세계적인 노력이 벌어지고 있다. 태양광, 태양열, 풍력, 조력, 파력 등 아무리 사용해도 전혀 고갈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와 수소, 연료전지, 폐기물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신에너지를 합쳐서 신재생에너지라고 부른다. 이런 신재생에너지는 모두 전기를 생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탄소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에 무탄소 전원이라고 한다. 에너지 전환은 결국 탄소를 뿜어내는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앞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전기가 기본이 되는 세상이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자동차로 바뀌고, 가스레인지가 전기레인지로 바뀌는 그런 세상이다. 그러므로, 전기에너지는 미래 청정사회의 유일한 에너지가 된다.
우리나라의 전기를 거래하는 한국전력거래소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력생산량은 총 54만 9천387GWh로, 발전원별로 구분하면 원전 32.5%, LNG 29.8%, 석탄 29.4%, 신재생 6.9% 순서였다. 원전의 발전 비중은 2009년 34.8%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며, LNG가 석탄을 추월해 두 번째로 많은 전기를 생산한 발전연료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에너지 믹스 환경에서 작년에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줄여서 분산에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분산에너지법의 목적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자는 것이다. 불과 5년 남은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우리로서는 현재의 에너지 믹스를 보면 목표 달성이 과연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화, 중질산사유가스화 등의 신에너지와 태양광, 풍력,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를 모두 포함한 신재생에너지원이 전체 전력생산의 설비용량만 보면 20%가 넘게 설치됐으나, 실제 전력거래에 참여한 비중은 8%가 안 된다는 말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재생에너지가 설비용량에 실제 전기생산에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태양광의 경우 계절과 일기에 따라 생산량이 들쑥날쑥하고 풍력도 주변 여건과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기까지는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자연의 제약조건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기를 실어 나르는 길, 즉 송배전 선로 부족으로 재생에너지가 한전의 계통망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기껏 투자한 재생에너지가 막상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현상은 참으로 안타깝다.
재생에너지를 실어 나를 전력망이 부족한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전기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기형적으로 수도권에 인구, 자본, 사회기간시설, 산업 등이 몰려 있는 특징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일단 서울로 몰려온다. 우리가 기차나 차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산을 넘어서 연결된 송전 철탑들이 서울로 서울로 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전남 영광과 부산과 경주, 그리고 울진의 원전, 충남 해안에 몰린 석탄발전소를 비롯한 각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는 절반 이상이 서울로 향하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휴일과 명절 기간에 혼잡을 빚듯이 전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남과 강원도에 집중적으로 늘어난 태양광 발전소의 전기가 들어갈 틈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깨끗한 전기를 생산해도 이미 포화상태에 놓인 송전 선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분산에너지법은 이런 전기의 수도권 집중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야가 합의한 해결책이다. 이 법의 핵심은 재생에너지가 생산되는 지역에서는 분산특구를 만들어 한전이나 전력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주변의 전력소비자에게 직접 전기를 팔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또, 발전소 주변의 전력 판매요금을 싸게 책정해서 발전소 주변으로 대형 공장을 비롯한 전기 소비자들이 옮겨 오도록 유도하자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는 수도권에 집중된 대형 공장이나 기업체들을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으로 분산시키자는 훌륭한 의도이다.
분산에너지법의 이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현실성이 있는가를 놓고 논란이 있다. 첫째는 지난 백 년이 넘게 전국적으로 똑같은 요금을 부담했던 소비자들이 지역에 따라 전기요금이 차등되는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 소비자들은 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남지역의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보다 전기요금을 더 많이 내는데 동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전기요금은 발전, 송배전, 판매 등 단계별로 원가를 나눌 수 있는데, 발전소 주변지역이라고 해서 무조건 원가가 싸다는 근거는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전기요금의 80% 정도가 발전에 필요한 가격이므로 이는 전국적으로 같고,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은 송배전과 판매요금이다. 문제는 발전소 주변지역에서는 송전원가는 낮을 수 있지만 소비자들의 집중 밀도가 낮아 배전과 판매원가는 대도시보다 높을 수도 있다. 따라서, 반드시 발전소 주변지역의 전기요금 원가가 낮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인력조달, 금융, 타 산업과의 연계 등의 이유로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몰린 기업체와 공장이, 전기요금만 싸다고 해서 발전소와 가까운 농어촌 지역으로 이사한다는 가정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산업용과 일반용 요금이 저렴한 곳에서 전기요금이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 철강기업들의 낮은 전기요금을 이유로 한국산 철강 제품의 수출을 불공정 무역으로 문제 삼은 것에서 보듯이 우리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전기요금이 싸다고 수도권 등 대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향할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분산에너지특구 지정과 전력직거래 허용은 자칫 전력산업 민영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정확하게 설계하지 않은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자칫 지역 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정부는 투명한 정보 제공과 국민적 논의를 통해서 이 문제를 다룸으로써 분산에너지법의 좋은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