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의 딜레마
기후위기의 시대이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지구의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야 인류의 생존이 가능하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기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 인류가 대기 중으로 뿜어 올리는 탄소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탄소중립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전환에서 많이 뒤처져 있다. 환경론자들은 정부의 의지박약과 산업계의 욕심이 에너지 전환을 더디게 한다고 비판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환경 때문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이 유럽이나 중국 등에 비해서 많이 늦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이 되면 2018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0% 줄이고, 2050년에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런 약속들은 우리의 탈탄소 의지를 천명한 것이지 누가 강제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면 곧 현실로 다가올 탄소국경조정이나 RE100 의무화 등에 의해서 큰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윤석열 대통령은 원전을 많이 지어 이를 해결하겠다고 원전 건설을 다시 시작했고, 새로 뽑힌 이재명 대통령은 재생에너지 육성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려 한다. 모두가 탄소중립을 위한 생각은 같지만, 접근 방법이 다르다.
우리의 에너지 전환의 큰 현안은 원전이냐, 천연에너지냐의 논쟁을 떠나 특정 지역에 집중된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가장 큰 소비지인 수도권으로 옮기는 것인가에 있다. 모든 에너지원 중에서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소비지로 실시간 수송이 가능한 에너지는 전기뿐이며,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결국 전기로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불균형한 개발로 인해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가 서로 멀어진 현실 속에서 전기를 수송하는 전력망 확보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결정하는 제일 중요한 현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전국을 연결하는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에너지 고속도로란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하는 재생에너지 생산지에서 기존 송전선로의 병목현상으로 수송하지 못하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가장 큰 수요지인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새로운 송전선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분산에너지법 통과로 재생에너지 생진지에 산업단지 등 대규모 전력수요 산업을 유치하면 좋겠지만, 수요분산은 당장 이루기 힘든 목표이므로 일단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고속도로의 가장 큰 장애는 전자파 등의 이유로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 설득과 이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 마련이다. 새 정부가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가장 큰 추진 과제로 삼은 만큼 이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있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기후에너지부 신설로 에너지 전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한다. 그런데, 기후와 에너지 두 맹수를 한 우리에 가두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 것인가라는 의심이 든다. 과거 영국의 실패 사례를 참고했으면 한다.
전력 문제 해결에는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수요지 분산과 계통망 확충에 있겠지만, 피할 수 없는 과제인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더 큰 비전을 품어야 한다. 자원확보 경쟁이 심화하는 시기에 활발한 에너지 외교와 이를 통한 해외자원 확보도 필요하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 때 활발하게 논의되던 동북아수퍼그리드도 재검토도 필요가 있다. 에너지는 공급망 확보 못지않게 합리적인 소비도 중요하므로 EERS, DR, BESS와 같이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004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중단 이후 불안정하게 유지되는 전력산업의 재구조화도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시점의 에너지는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의 변화가 핵심이며, 그 가운데 전기가 있다. 비용이 안 들고 깨끗한 청정연료로 만든 전기를 쓰게 되면 자원안보도 해결된다. 그 힘든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모두의 지혜가 모여야 한다. 이 거대한 발걸음을 시작하는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다. 물론 그 길이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