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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진년 Oct 13. 2024

빨랫줄에 행복을 널다

빨랫줄에 행복을 널다 / 허진년


일요일 오후

외출한 아내가 전화기로 지령을 내린다

세탁기 멈추었으면 빨래 좀 널어라

마누라 말 잘 듣는 것이 세상 공덕 중에 으뜸이라고 하니


달콤한 잠결에 들리던 규칙적인 회전음이 빨래 소리였구나

빗소리로 들리던 휘파람소리가 헹굼 물 빠짐 소리였구나

둔탁하게 베란다 창을 두드리던 소리가 탈수 소리였구나


뚜껑을 열자

손에 손 잡고 씨름 하듯이 허리춤을 부여잡은

식구들이 가장자리로 가지런히 잠을 자고 있다


그래, 서로의 등을 두드려서 하얗게 빛을 내었구나

따뜻한 가슴을 풀어서 세제를 녹였구나

가는 목덜미를 씻겨주며 말끔하게 헹구어 내었구나


아내의 좁은 어깨를 펴서 빨래줄 중앙에 편안하게 앉히고

주름진 내 다리통을 반듯하게 펼쳐서 가장자리에 세우고

매일 식구들 체면을 닦아주던 수건의 네 귀를 꼭 맞추어

가을 국화꽃 향기를 묻혀서 널어놓고


소파 깊숙이 몸을 낮추고 올려다보니

내가 아끼고 사랑하여 왔던 모든 것이 빨랫줄에 있다


주) 빨래 사진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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