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호의에 대하여>를 읽고
정답이 정해진 세상의 규칙과 엄격한 원칙들 사이를 오랫동안 걸어왔습니다. 그 길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문형배 판사의 <호의에 대하여>는 단순한 법조인의 기록을 넘어,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제 마음을 적셨습니다. 이제는 규정된 삶의 궤도를 벗어나, 인생의 다음 장을 안내하는 따뜻한 나침반을 품고 문학의 숲으로 첫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길은 먼데 가야 할 길은 더 먼데..."
안치환의 노래 '고백'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진정한 나로서의 삶'을 시작하라 합니다.
저자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착한 사람이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하는 것보다, 착한 사람이 법을 배우는 것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가 되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지요. 이 문장을 보며 제가 가르쳤던 수많은 선한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바로 제가 문학의 숲에서 찾은 첫 번째 길입니다.
책 속에서 만난 "자살을 열 번 반복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린다"는 구절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자해나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행하던 수많은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엔 너무 늦어버린 경우도 있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로 손조차 대보지 못한 채 안타까워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불러오고 지원팀을 꾸려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적극적인 자세와 '살자'라는 외침을 들어주는 귀였습니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살 수 없는 것이 무서운 일이지"라는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없는'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임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매거진 제목처럼, 이 책은 문학의 숲에서 길을 묻습니다. 저자는 <레미제라블>, <팡세>, <에밀> 등 수많은 고전을 통해 법의 엄격함 이면에 숨겨진 '인간에 대한 호의'를 찾아갑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은 "다양성 없는 통일은 무익하고, 통일 없는 다양성은 파멸을 가져온다"는 파스칼의 문장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를 경영하던 시절, '비민주적인 관리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으쌰으쌰' 한 방향으로 가야 할 때,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을 불편해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낸 소중한 의견이 바로 우리 조직을 정화할 '다양성'이었음을, 그 덕분에 더 나은 방향을, 더 오래 고민하여 더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토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일침에 더욱 공감합니다.
저자에게 공부는 '존재의 증거'입니다.
"공부가 원초적 본능이자 삶의 모든 과정이라면, 공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된다."
현직에 있을 때도 은퇴를 한 지금도 배움에 대한 저의 열정은 한결 같습니다. 방학 때마다 각종 연수를 찾아다니며 최신의 교육 동향을 파악하고, IT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또 늘 책을 가까이 하여 읽기를 즐겼고, 드라마를 보든 예능,영화를 보더라도 그 안에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곤 했습니다. 저자가 문학에서 법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신을 찾아 가듯 말입니다.
이제 퇴직 후의 공부는 누군가를 이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즐기기 위한 '호의'입니다. <에밀>에서 강조하듯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현실론 뒤에 숨기지 않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제가 문학의 숲에서 찾은 공부의 태도입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저자는 늘 '최소 간섭'과 '성선설'을 믿어왔습니다. 루소의 <에밀>을 다룬 대목은 그런 저자의 신념에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자녀 교육 역시 옳다면 실천하는 것이지, 옳은 줄 아는데 현실론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교육자로서, 또 부모로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현실론' 앞에 무릎을 꿇어왔나요?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바를 흔들림 없이 실천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일 것입니다. 평교사 시절, 내가 맡은 학급과 수업에서조차 신념을 지키는 일은 매 순간 투쟁과도 같았습니다. 관리자가 된 후에는 그 무게가 더했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지만, 거친 현실 앞에서 그 말은 종종 무색해졌습니다.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요구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그들의 선택과 인생 또한 그들의 몫임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 학교라는 틀 안에서 그 모든 교육적 이상을 짊어지고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정년이라는 완주를 조금 일찍 내려놓고 명예퇴직을 선택한 이유에는, 아마도 이러한 고뇌의 무게가 담겨 있었음을 이제야 고백해 봅니다.
책의 후반부, 저자가 김장하 선생과의 인연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저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속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사법 시험 합격 후 인사를 간 제자에게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사회에 갚아라"라고 말씀하시던 어른. 그 앞에서 다 큰 어른인 문 판사가 아이처럼 울먹이던 모습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저 또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학교장 장학금을 만들어 아이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거창한 것은 아니었으나, 누군가에게 받은 '호의'를 사회에 돌려주려는 저만의 작은 흉내이자 진심 어린 실천이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 저자가 동생들에게 남긴 인사를 읽으며 저 또한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저 때문에 제때 공부할 기회를 놓친 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그 짧은 문장에서 그의 신산했던 삶과 그를 지탱해준 가족들의 헌신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을 딛고 서 있는 존재입니다. 저 역시 37년의 세월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곁을 지켜준 가족들의 호의 덕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리고 타인을 향한 따뜻한 호의입니다.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맘껏 누릴 것"이라는 저자의 다짐처럼, 저 또한 브런치라는 새로운 광장에서 제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호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판사 한기택이 좋아했다는 시 구절을 끝으로 이 글을 맺으려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더디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길고,
기쁜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짧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37년의 시간은 제게 때로 더디고 때로 짧았지만,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 앞에서 그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도 가라 하지 않은 이 길 위에서, 저는 이제야 비로소 타인을 향한 '호의'라는 이름의 가장 따뜻한 문학을 시작하려 합니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으로 이어질 때까지, 이 깊은 문학의 숲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고이' 머물다 가는 따뜻한 호의의 마중물이 되겠습니다."
글. 고이(G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