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요리학교에 입학한 손녀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쑥 칼국수" 편에 다다랐습니다. 여전히 쑥이고, 여전히 봄입니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칼국수는 초겨울의 음식입니다.
아직 가을걷이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들녘엔 마지막 추수 거리들이 남아 있고, 저녁이 되면 아랫채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영롱하게 타오릅니다. 그 불빛이 어머니의 손길을 따라 윗채 툇마루로 번지면, 그곳에서는 국수 반죽을 미는 '쓱쓱 싹싹' 소리가 정겹게 들려옵니다.
대부분은 밀가루 국수였지만, 드물게 콩가루가 있는 날은 그것을 넣어 고소함을 더했습니다. 별다른 양념도, 국물 낼 재료도 없었지만, 꽁보리밥에 지쳤던 식구들에게 칼국수는 진정한 별미였습니다.
얇게 밀린 반죽이 척척 접혀 칼끝 아래서 슬겅슬겅 썰릴 때면, 저는 어머니 곁에 앉아 조바심을 냈습니다. 얼른 썰기를 마치고 '꽁다리'—국수 반죽의 끝자락을—받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그것마저 양식에 보태기 위해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 했고, 저는 옆에서 끊임없이 "고만, 고만"을 외쳤습니다. 꽁다리가 많아져야 제 간식이 풍성해지기 때문이었지요.
마침내 손에 쥔 국시 꽁다리를 아랫채 아궁이의 활활 타는 장작불 위에 펼치면, 마법처럼 그것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빵 하고 터질 듯한 순간, 부지깽이로 조심스레 뒤집어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면, 겨울 저녁의 정겨운 간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그 꽁다리 때문에 국시 미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아버지는 국시 그 자체를 진심으로 좋아하셨습니다. 별다른 국물 재료 없이도 어머니는 맹물에 채 썬 호박이나 부추, 얼갈이배추 몇 잎을 띄우고, 마지막으로 '미원'을 살짝 넣어 감칠맛을 더했습니다.
지금은 화학조미료라 불리며 한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그것이지만, 그 시절에는 맛의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 미원의 맛을 각별히 좋아하셨고, 요리에 빠지면 상이 엎어지는 일이 있어도, 미원이 들어간 음식은 언제나 무사했습니다.
커다란 양푼이에 칼국수가 한가득 끓여지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두세 그릇씩 나눠 먹고도 반은 남았습니다. 남은 국시는 둥근 양은 쟁반으로 덮어 군불이 따뜻하게 데운 아랫방 윗목에 놓입니다. 그러면 주무시던 아버지가 새벽에 깨어나 한 그릇을 더 드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가 손수 밀어 만든 칼국수를, 비록 사랑한다는 말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만일 그때 이 단어가 쓰였다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말씀하셨을 겁니다.
"나는 네 어머니의 칼국수를 사랑한다"고.
지금도 가끔, 잠결에 아버지께서 국시를 맛있게 드시던 ‘후루룩 후루룩’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 따뜻하고 평화롭던 초겨울 밤의 풍경이 눈앞에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리운 아버지, 하늘나라에서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칼국수도 드시지 못하고, 어찌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처럼 포근한 겨울 저녁이면 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국시 꽁다리와 홍두깨소리
봄빛은 여전히 쑥 향기로운데
내 마음은 자꾸만
시린 초겨울 툇마루로 갑니다
'쓱쓱 싹싹'
어머니의 홍두깨소리 따라
윗채로 번지던 아궁이 불빛
양식 보태려 바지런히 놀리던 칼끝 아래
동그랗게 말려가던 조바심
그 끝에 받아 든 귀한 '꽁다리'
장작불 위에 마법처럼 부풀어 올라
겨울 저녁을 고소하게 채우던
투박한 나의 귀하디 귀한 간식
별다른 양념 없어도
미원 한 꼬집에 허허 웃으시며
양푼 가득 채우던 아버지의 사랑
지금도 잠결에 들리는 듯합니다
식은 국수 쟁반 걷어내며
새벽녘 아버지가 내시던 '후루룩' 소리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어도
그 한 그릇에 담긴 마음
겨울 밤보다 깊고 따뜻했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오늘처럼 포근한 겨울 저녁이면
하늘나라에 끓여 올릴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이 간절합니다.
"말 한마디 없어도 양푼 가득 차오르던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미원 한 꼬집보다 더 진한 감칠맛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