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삶보단 행복한 삶
행복을 찾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같은 또래 친구들과 살면서 처음으로 함께 떠난 해외여행, 내가 유럽을 가다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처음 갔던 프랑스는 너무 여유로웠다. 특히나 사람들이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산다는게 너무 멋있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에펠탑에 가서 같이 영상도 찍고 센 강에서 크루즈도 타고 남의집 대문 앞에서 너무 예쁘다며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 다음 나라는 스위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설산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풍경을 바라보며 페러글라이딩도 하고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독일까지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 왈칵 눈물이 났다. 내가 행복할수가 있구나. 나도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지낼수 있구나. 그렇게 첫 여행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한국으로 귀국 후, 나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절에 들어갔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스님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어쩌다보니 출가 상담까지 받게되었다.
“스님, 저는 사회에서 너무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습니다. 어떻게 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물으니 스님은 답했다.
“석가모니께서 수행을 하실때 돈, 명예,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으셨는데 가장 힘들었던게 뭔줄 아느냐, 바로 인정욕구다. 그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냐는 소리에 흔들렸다는 거다. 그러니 인정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아 내가 예민한게 아니구나,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는걸 처음 깨닫게 되었다.
수도원에 갔을때도 수사님이나 신부님과 상담을 하며 물었다.
“저는 살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부님은 답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하느님께 물었더니 답해주시진 않았습니다. 그저 스스로를 믿을 뿐이죠, 본인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거 아닐까요?“
그 얘기를 듣고, 뭔가 해답이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님이든 신부님이든, 다 사람사는 곳이고 어쨌든 서로 부딪히면서 살아야 한다는 많은 얘기를 듣고 인간에 대해서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엄청 많이 다녔다. 올레길도 완주하고, 명상도 배우고 영화제나 교육관련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특히나 나는 잃어버린 내 자아와 열정을 찾기 위해 청소년 관련 봉사를 많이 했다. 캠프부터 대안학교, 해외 봉사활동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했던거 같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일일히 편지를 써서 줬던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나에게 고마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살면서 좋은 어른을 만난적이 없었는데 선생님을 만나서 처음으로 믿을수 있는 어른을 만나 행복하다는 편지를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 친구들을 보면 순수하고 풋풋한 그 시절, 그리고 힘들고 괴로웠던 감정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믿을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나를 좋아하는 친구를 보니 나 좀 괜찮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정말 쪽팔리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과거의 상처가 계속 떠오르기도 하고, 즐거우면서 동시에 공허하기도 했다. 그래도 단 한가지 확실하개 느낀건,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이 얘기 나누는 것, 믿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구나, 이제는 조금 나라는 사람을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낭만을 찾아, 의미를 찾아 여기저기 헤메고 다녔다. 사실 삶에 의미는 없다.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거고, 어쩔 수 없이 사는거다. 그렇다면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겠나. 이제는 좀 더 깊숙히 오롯이 혼자가 되어 부여할 의미를 느끼고 싶었다. 학생이 아닌, 장손이 아닌, 아들이 아닌, 누군가의 친구가 아닌, 정말 발가벗겨진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그렇게 난 태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