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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섭 Oct 11. 2024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도망가자

스물일곱, 어찌저찌 대학원을 졸업 후 이제 나는 완전한 백수가 되었다. 졸업하고나면 뿌듯할줄 알았는데 알수 없는 공허함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이때까지 나는 뭘 원했던거지? 나는 진짜로 하고싶은걸 하고 있나?


졸업하고 나서 느꼈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닌걸, 내 인생에서 내가 나답게 산 적은 한번도 없었던 거 같다. 10년 전 고등학교를 관둘 때 마음가짐은, 어떻게든 성공해서 나를 미워한 사람에겐 복수를, 나를 믿어둔 사람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성공이나 꿈을 이루는게행복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닌거 같다. 확실히 아니다. 물론 내가 사람들에게 겉보기에 떳떳하게 사는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속은 점점 뒤틀리고 곪고 있었다.


결국은 이 모든게 나의 기준이 아니라 인정 받기위해서 선택했던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살았으니 이를 바득바득 갈며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원동력 삼아 이뤄냈던 거란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남은건 뭐지? 껍데기뿐인 인정? 사람들의 박수? 나에겐 아무 의미도 쓸모도 없었다. 졸업해서 교원자격증 하나 따려고 교수님한테 빌빌거리며 졸업장을 구걸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너무 쪽팔리고 미안한 일이었던 거다.


어렸을때의 나는 참 순수했다. 순수한 열정을 갖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이상과 현실이 부딪힐때,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순수함이 부정당하고,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한 열정이 이용당했을때, 열정을 잃어가고 현실과 타협해가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내가 믿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구나. 졸업 후에 나는 제주도의 집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게 해외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휴대폰과 번호를 바꾸고, sns도 탈퇴한 나는 편지를 한장 남기고 떠났다.


To. 부모님께

엄마, 아빠!

이 편지를 읽을때 아마 나는 여기 없겠지?

나는 여기서 좀 멀리 떠나기로 했어.

번호도 바꾸고 연락이 아예 안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살다보니까 엄마 아빠가 좀 더 대단해보이고 존경스러웠어. 어떻게 한 일을 30년 넘게 버틸 수 있었는지,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었는지.. 아마도 내가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했겠지?

근데 나는 아닌가봐. 이 세상은 나에게 너무 버겁고 힘드네.. 정말 열심히, 최대한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엄마 아빠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고 죽고싶었을때, 가족 생각이 많이 나더라. 이렇게 세상을 떠나면 너무 허무하잖아?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배신이고, 그래서 덕분에 이렇게 지금까지 버틸수 있었던거 같아. 방구석에서 한 발자국도 떼기 힘들었을때, 바깥은 정말 지옥이었어. 아무래도 나는 인간이 아닌가봐.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어.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거 보면 기특하지? ㅎㅎ

근데 이제는 한계가 왔어.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고.. 모든 관계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 필요했나봐.

참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부끄러운 삶을 산것만 같아. 내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떤 교수님이 엄마한테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런거라고 했잖아. 그래서 난 보란듯이 증명하고 싶었어. 이게 쉽지가 않네.

아무래도 나는 너무 나약한가봐. 남들은 잘만 버티는데 그지? 엄마아빠가 탓이 아니라 예민한 내 탓이니까 그렇게 생각해줬음 해.

나 솔직히 말해서 죽고 싶었다? 근데 죽기 전에 하고싶은게 너무 많더라,, 엄마를 닮았나봐 ㅋㅋ 그래서 후회 없이 하고픈거 다 하고 돌아오려고!

그리고 동생아! 너도 관심 많이 받아야 하는 나이인데 내가 아픈 바람에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거에 대한 미안함이 아직도 커. 나중에 내가 잘되면 보답할게. 그래서 너도 너의 행복을 찾아서 살았으면 좋겠다.

봄이 여름이도 그렇고 친구들 많이 보고싶을거 같네. 같이 모여서 웃던 시간들, 함께 했던 순간들 기억하고 잊지 못할거야.

여튼 나 죽으러 가는거 아니고 엄마 아빠를 믿으니까 나를 믿고 시간을 줬으면 해. 한달만 기다려주면 내가 이 삶에 대해서 해답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느끼고 살았음 좋겠다. 잘 지내고, 서로 싸우지 말고 ㅎㅎ 그럼 이만 조심히 다녀올게! 나를 찾아, 의미를 찾아, 행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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