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속 특별함
늦은 새벽,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한강은 엄청 고요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결심하고 여기에 서있었겠지? 근데 나는? 내가 죽을만한 사연이 있는 사람인가?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냥 듣고 아무일 없다는듯이 살아가는데 내가 없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참 죽는거에도 이유가 있어야 되는거구나..
어느순간부터 힘들다라는 말이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어야만 하고 이유가 필요한 말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 힘들어“
“누구나 다 힘든거야“
“그게 아니라, 나 정말 힘들어”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들어?“
“그렇지? 내가 배부른 소리 하는거지?“
‘아니, 배부른 소리 아니야. 난 매일매일이 버거웠어, 사람들이 힘들다고 내가 안 힘들어해야 되는건 아니잖아,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 충분히 힘들어해도 된다고, 죽음을 매 순간 떠올리면서 잠들었고 다음날 눈 뜨는걸 두려워했단 말이야. 그정도면, 그정도의 느낌이면 힘들어 해도 되는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사연을 만들고 관심을 주려고 한다. 힘듦조차 비교하면서. 어쩌면, 가장 우리를 괴롭혀 왔던건 힘듦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감받지 못하는 힘듦, 나의 힘듦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 아닐까.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두렵고 무서워졌다. 어차피 내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안 올테고, 슬퍼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가족들이 보고싶을거 같아. 아마 사랑해서겠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몇시간을 펑펑 울었다. 울어본적이 없어서, 우는 방법을 몰라 울어도 눈물이 안나왔다. 내 몸에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이 박혔나보다. 아무래도 나는 인간이 아니야. 그래도 그러고 나니 한결 기분이 편해졌다.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배고픈걸 보니 아직 살고 싶나보다. 오랜만에 푹 잠든 날이었다.
다음날, 그래도 할수있는데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굶어죽기야 하겠어? 아무 소리소문없이 죽는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렇게 대학원 면접을 다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뜬 공고를 확인했다. 제주도, 친척도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여행삼아 가자는 생각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눈이 펑펑 오던 날, 비행기에 몸을 싣고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서 가는 첫 여행이 이런식일줄이야.. 그렇게 소주에 회를 사먹고 숙취에 찌든채 면접을 봤다.
결과 발표 당일, 이번에도 당연히 안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결과를 봤는데 음..?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게 맞나? 꿈인가? 몇번을 확인했지만 확실했다. 이제 드디어 남들과 같은 삶의 궤도에 올랐구나,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놓였다.
그렇게 나는 제주도로 향했고, 되게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재밌었다.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던 내가 그것도 제주도에서 사람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있다니! 남들은 별거 아니겠지만 나에겐 엄청 뜻깊은 일이었다. 그렇게 친구, 가족들을 초대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올레길도 완주하고, 교생실습을 하며 나와 같은 친구들을 보면서 울고 웃기도 많이 했던거 같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앞으로 1년이 더 남게 되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 봉준호 감독님 수상소감을 보고 처음 알게 된 말이다. 평범함 속 특별함이 있다는 말 아닐까?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나는 잘하는게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지만, 또 남들이 봤을때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왔고 그게 결국엔 내 정체성이 되었던것 같기도 하다. 특별함이 평범함이 되고, 평범함이 특별함이 되는, 결국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