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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섭 Sep 27. 2024

열일곱, 자퇴하겠습니다.

방황의 시작

열일곱, 고등학교를 진학한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첫날부터 야자를 시작했다. 야간자율학습 동의서를 쓰는데 모든 전교생이 동의해야만 했고 동의를 하지 않으면 혼이 나는 상황이었다. 근데 이럼 '자율'이 아니지 않나? 여튼 중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와 함께 갔던 학교는 자연스럽게 같은 학교 출신인 친구들끼리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 도망칠까?" 어느 날, 친구의 제안으로 야자를 째게 되었다. 그 순간, 항상 말을 잘 듣던 학생이었던 나는 왜인지 모르게 희열감을 느꼈다. 그렇게 몇번 일탈이 반복되면서 서로 친해지게 되었고, 남들처럼 잘 적응해서 지낼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다니던 친구들 중 한명이 나에게 물었다. "니는 왜 자꾸 꼽사리끼냐?" 나는 어버버거리다가 그냥 웃고 넘겼다. 그렇게 어울리며 다니던 날 어느날은 급식실이었다. 잔반처리 내기를 하자는 친구의 말에 그러자고 말하고 나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나는 혼자 다른 걸 내서 지게 되어 친구들 5명의 잔반처리를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잔반 처리가 어느순간 내 담당이 되는것처럼 느껴졌고 내기를 할때마다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듯한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장난이 선을 넘을듯 말듯 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어느날은 나도 똑같이 장난에 맞받아친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정색하면서 "야, 친구사이에도 급이란게 있는거야. 알아? 잘하는 것도 없는 병신새끼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벙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놀림의 대상이 점점 되어갔고 나를 툭툭 건드리거나 치고 지나가는 애들도 생기면서 팔에 멍이 들어서 집에 가는 날도 생겼다.

 

어릴때부터 양보하고 배려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친구들의 장난에도 항상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체육복을 훔쳐가도, 컴퍼스로 등을 찔러도, 지우개똥을 머리로 던져도, 교과서를 돌려받아도, 돼지새끼라며 냄새난다고 놀려대도 말이다. 사실 맞다. 나는 잘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학교에서의 권력이라 할 수 있는 '공부, 운동, 음악, 미술, 친화력' 등등.. 그렇게 누군가 나를 괴롭히는게 당연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지내는 나날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가장 믿었고 의지했던 친구는 나에게 쟤네들이랑 어울려야 학교생활이 편해진다며 설득을 자꾸 하였고, 나는 이미 관계에서 큰 실망감을 가지고, 친구들을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숨어있고, 혼자 밥먹기도 두려워 아무도 없는 매점에서 빵을 사먹기도 했다. 굶는 날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수업을 아예 빠지고 담 넘어서 도망가는 날들도 많아졌고, 그렇게 나는 사회부적응자가 되어갔다.


그렇게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학교를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2학기가 시작된 후, 한 친구가 나에게 찾아왔다. "왜 자꾸 도망다니는데, 불만있음 함 싸우던가" 사실 싸우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여유도 힘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자퇴를 결심했던 계기는 어느날 그 친구들이 내 사물함에서 샴푸를 짜면서 자기들끼리 히히덕 거리면서 놀고 있던거다. 나는 그걸 보고 살면서 처음 화를 냈다. "재밌나 이게?" "에이 장난인데 왜 그래" 장난? 자기들만 재밌으면 장난인가? 나는 샴푸 범벅이 된 사물함을 보며 교과서는 쓰지도 못하게 되었고, 이건 선을 넘었다는 생각에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은 "친구들끼리 장난인데 왜그래, 너가 너무 예민하다." 그런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문제구나, 나는 문제아였구나. 이후 상담실로 상담을 받게 되었다.


학교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던 중, 학교를 관두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니가 여기서도 적응을 못하는데 밖에서 잘 살거라 생각해? 자퇴한 사람들 중 99프로는 다 실패해, 너는 무조건 실패할거야" 나는 대답했다. "네, 그럼 제가 1프로가 될게요." 나름대로 나는 열심히 살았던거 같은데, 왜 아무도 나에게 관심도 없고, 내얘기를 들어주지 않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퇴를 하고싶다며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잘못됐어. 교육제도를 바꿔야 돼"라는 말도 안되는 궤변을 말하며 학교를 다니는 게 시간낭비고 내가 집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하였다. 처음엔 망설였던 부모님도 결국 나의 적극적인 어필로 인해 학교를 관두게 되었다.


학교에 자퇴원서를 쓰고 아무도 모르게 도망치듯 나오던 날, 펑펑 울면서 '나는 꼭 성공할거야'라고 다짐하며 전속력으로 집까지 뛰어왔던 그때의 감정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이후, 사회에서 완전히 도태된 나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대인기피증이 심해져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길고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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