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처럼, 삶도 결국 반복과 회복이다.

트레이너의 하루 끝에서 쇼펜하우어를 펼치다

by 위피티


나의 의지는 여전히 살아있다.


오후 11시 44분, 퇴근.

정확한 숫자가 그날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야간 주유소에 잠시 들렀다.

기름을 넣는 동안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이 뿌옇게 피로로 덮여 있을 때

기름 넣는 5분은 작은 쉼표처럼 느껴진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편의점 야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씻고 눕기 직전

그냥 이렇게 잠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꾸준함을 유지하자.’

그 생각 하나로 블로그 앱을 열었다.

그건 어쩌면 내 일상의 작은 의식 같은 것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펼치다.


1장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흔, 왜 인생이 괴로운가.”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살려는 의지를 충분히 갖고 있으나
이 의지가 충분히 만족되지 않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어쩌면, 트레이너라는 일은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이 ‘충분히 만족되지 못하는 현실’ 사이를

매일 오가는 직업인지도 모른다.



변화는 고통의 반복


운동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은

몸을 바꾸고 싶어 하고,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어 한다.

그건 단순한 외형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건

삶의 무게를 이기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무겁다.

마음은 원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고,

시간은 없고, 성과는 느리고,

작심삼일이 반복되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사람들도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이 질문 앞에 선다.

“무엇이 사람을 계속 움직이게 할까?”



‘행복’의 정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고,

그 행복은 ‘이성에 맞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란 그저 본능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말했다.

우리 삶은 이성이 아닌 충동에 이끌려

방향 없이 흘러간다고.


그리고 나는 그 두 시선 사이 어딘가에 있다.


트레이너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이성적으로 짜인 스케줄과 체계 위에 있지만,

그 속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충동이다. 의지다.

살고자 하는, 더 나아지고자 하는 충동.


나는 오늘도,

회원들의 그런 의지를 받는다.

때론 지치고, 때론 흔들리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그 간절함을.



고진감래, 달콤함은 늘 마지막에 온다.


그렇게 보면

나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반복되는 수업과 피드백, 식단 상담.

한 달의 목표, 성과, 재등록, 시간표 조율.

하루에도 몇 번씩 현실의 압박과 마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왜일까?


살고자 하는 의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그 의지는 충분히 만족되지 않기에

계속 나를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삶이란 ‘운동’과 닮아 있다.


만족은 잠시이고,

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지나야

다시 편안함에 다가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의 끝에서

쇼펜하우어를 읽고,

조용히 내일을 준비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오늘도 나를 앉혀놓았다.
이 의지가 다 닳기 전까지,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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