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라이프
소리 내어 잘 웃지 않았다. 소리 내어 웃을 줄을 몰랐다. 기분이 좋으면 빙긋 미소가 전부였다. 몸은 늘 경직되어 있었고 미간엔 힘이 가득했다.
누구냐고? 몇 년 전의 내가 그랬던 기억이다.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서 종종 거리며 일상을 처리했다. 일처리는 미리 해두어야 편해서 직장일도 항상 바빴고, 아이들 교육도 버거웠다. 욕심 많은 엄마라서 아이들의 성적에 간섭했고, 입시에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했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신경 쓸 일들이 끊이지 않아서 곤두설 때가 많아서였을까? 크게 깔깔댄 기억이 없다.
지금은 작은 일에도 깔깔거리기를 좋아한다. 사소한 유머에도 웃음이 빵 터진다. 말을 할 때도 웃으며 이야기할 때가 많다.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얼굴 표정에 차이가 크다.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덕질 때문인가 보다. 일찍 출근해서 방탄소년단 포스팅을 5년 넘게 매일 했다는 것은 아무리 애정이 넘친다고 해도 쉽지 않다. 나도 내가 놀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짐없이 하는 이유는 아미의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덕질에 에너지를 쏟는 아침이 기분 좋기 때문이다. 포스팅 마무리에 이웃님들에게 안부를 묻다 보면 내 표정에 웃음이 흐른다. 정신없었던 새벽 시간이 햇살 가득한 아침처럼 평화로워진다.
와르르 바쁘게 쓰지만 발행을 누르고 뿌듯해진 기분으로 산을 걷는다. 오르막 시간은 10분 정도지만, 딱 나를 위한 길인 듯 적당하다. 작년부터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었다. 아침에 40-50분의 걸음이 운동에 크게 도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체력이 밑바닥인 나 같은 사람에게나 운동일뿐. 매일 걸으며 혼자 좋아 빙그레 웃었던 산책로. 걷기를 좋아해서 동네는 늘 걸었지만 산을 걷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걷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번지는 아침 시간, 내 웃음의 원천은 아무래도 여기다.
사소한 일에 웃음이 잦아졌다. 하늘이 예쁘면 아무도 듣지 않는 감탄사를 뱉으며 웃는다. 바람이 살짝 시원해도 웃는다. 초록의 색감이 바뀌어 계절이 느껴지면 슬쩍 눈웃음을 전한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유튜버의 강의에도 웃음이 터진다.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걷다 보니 웃음이 생활이 되었을까.
타인과 대화를 하면서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제 눈웃음은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웃음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지난 일이지만 아픈 이야기를 그리 환하게 웃으며 말하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사소한 애드리브에 빵 터지고, 안부를 묻는 반가운 인사에도 까르르 거린다. 그래서 조금 시끄러워지긴 했다.
매일이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첫째만 보면 툴툴댄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싸우는 첫째와 요즘도 한투닥 하고 사과의 톡을 주고받는다. 그 녀석만 아니면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는데! 유일한 싸움꾼인 아들 빼고는 맘 상할 일도 없고 속상할 일도 없다.
헛헛하고 허전할 때도 있고, 유난히 외로워서 마음이 고요해질 때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서 발랄해져 있다. 예전엔 짜증 나고 신경질 났던 상황에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내가 할 말 안 하고 참는 성격도 아니라서 마음 상할 일도 없긴 하다.
그제 후배들의 사주를 재미 삼아 봐주었다. 두 후배 모두 남편의 이직으로 고민이 많았다. 그녀들의 가정생활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후배들의 마음 노력이 많이 엿보였다. 아내로서 치르는 희생도 크게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연대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조금의 의견 차이가 큰 갈등이 되어 마음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말리고 싶지만 그 마음 누르고 지켜봐야 하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남편이 하겠다는데 어쩌랴! 아닌 것 같아도 지원해 주며 견디는 수밖에.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23년을 해왔는데 잊고 있었다. 맞춰 사는 일에 대해.
팔자 편한 년
나에 대한 감탄사가 만화의 말풍선처럼 욕으로 떠올랐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스트레스가 없다. 엄마라서 치러야 할 빚도 거의 치렀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취업이나 결혼문제로 힘든 중년 여성도 많겠지만, 과도한 욕심이 부르는 결말이 어떤지를 경험했기에 이미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아이들의 몫에 내가 뭐라도 하나 더 얹어 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눈앞에서 거슬릴 때는 잠깐 스트레스를 받지만, 녀석들의 인생 자체에 개입할 마음이 없어서 근본적인 걱정은 없다. 막상 심각한 일이 터지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아니다.
가족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이라 " 뭘 하면 재미있을까?, 심심한데 뭘 하면 즐거울까"를 고민하며 사니, 나처럼 팔자 편한 년도 없는 것 같다. 중년 여성들이 왜 이혼을 부러워하는지 알 것도 같다. 자유로움이 호흡처럼 자연스럽다. 특별하게 욕심이 없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걱정도 없는 편이다. 직장일도 힘들지 않다. 일이 적지는 않고, 스트레스도 있지만 어디 한 두해 겪었나. 이 정도면 양호하다.
평화로운 시기에 매일 초록을 만나서 좋은 텐션을 유지하니 웃음이 많아졌나 보다.
이혼을 해서 팔자가 편해지고 그래서 웃음이 많아졌다는 의도로 읽혔다면 전혀 아니다.
이혼이 내 인생의 행불행과 웃음의 양과 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연이 스며든 일상이 평화로워서 웃음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든다.
웃음이 많은 만큼 눈물도 많아졌다. 책 읽다 울고, 영화보다 울고, 음악 듣다 운다. 잘 웃는 만큼 잘 울기도 한다. 내 인생을 생각하며 우는 일은 없지만 타인의 삶에서 내가 보이거나 공감 포인트가 생기면 눈물도 잘 흘린다. 갱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웃음이 많아지며 덩달아 눈물도 많아진 탓인가 보다.
언제까지 팔자 편한 년. 이라며 자족할지는 모르겠다. 팔자 편하다고 자족하다가 어디 아프거나, 사소하더라도 사고가 있을까 봐 걱정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긍정적이지만 태생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기도 해서, 뱉은 말이 다른 부메랑이 되어 날아들까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꾸어 볼까.
팔자 편한 년.
보다는 '잘 웃는 년'이고 싶다. 쉽게 깔깔대고 사소한 일에도 빵 터지는 '기분 좋은 년'으로 지내고 싶다.
눈에 잔주름은 가득해도 눈웃음이 매력적인 아줌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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