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서 Sep 27. 2024

16. 나는 솔로와 끝사랑

돌싱 라이프

'오늘 저의 일상이에요~' 콧바람에 섞인 애교가 남다를 것 같은 여성의 사진이 올라온다. 오늘의 인기 글이다. 인기글에는 예쁜 여성이 외모를 한껏 뽐낸 사진이 있다. 사진이 담긴 글이 최고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일은 예외가 없다. 미모의 여성은 연예인을 닮은 것도 같은데, 진짜는 아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나도 어플 사진이라는 것은 금방 알겠다. 빼어난 미모는 몇 프로가 진실일까? 외모가 제일 중요한 세상이 맞는가 보다. 모든 사진이 어플인 걸 보면.


'인기녀의 미모는 진실일까?' 의견이 분분해질 때면 남의 이야기에 귀가 쫑긋 선다. "인기녀를 실제 보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다"라는 반응이 제일 재미있다. 실제 이쁘다는 이야기도 어쩌다 있지만, 온라인과 실재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나보니 2%도 같지 않다며 깔깔거릴 때, 남을 험담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재미있다. 감추어진 진실이 반전일 때 흥미가 생기는 건, 본능일까. 보이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타인의 삶에 관심 없는 나조차 '카더라'에 귀가 열리니, 호기심이 많은 남성들은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에 이끌려 클릭할 수밖에 없겠다. 진실의 비율을 예상하며 사진을 감상하는 일이 즐거울 테니까. 


어플을 이용한 사진은 온라인 성형을 가능하게 했고, 실물과 다른 부캐로 살아가는 일을 허락했다. 실재와 전혀 다른 외모를 가공해서 남들에게 찬양받으려는 심리를 진지하게 따져 묻고 싶지는 않다. 외모 지상주의가 어디 한 두해 일인가. 예쁘면 유리한 경우가 한두 번이냐고. 쳐다보는 남성의 동공 크기부터 다르니 말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요즘은 개성 있게 꾸며서 외모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다가도 눈에 확 띄는 미모를 마주하면 남다른 아우라에 본인도 모르게 눈길이 가며 호감이 급상승한다. 사람은 아름다움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는가 보다.    

 

예쁨과도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젊음과도 차이가 벌어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잡티와 각종 주름, 처짐에 눈길이 갈 곳을 잃는다. 얼굴 어느 구석을 쳐다봐야 그나마 마음이 덜 아프려나, 눈동자를 굴려보지만 어딜 봐도 위로가 되는 부위는 없다. 나이 들면 예쁜 년이나 안 예쁜 년이나 같다더니, 그 말이 정답임을 깨닫는 인생 시즌이다. 한때 예뻤던 얼굴도 나이 든 티는 난다. 위로라면 위로다. 또래 사이에서 외모로 기죽을 일은 없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주변 분위기가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다행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모임은 다르다. 참여자가 나보다 훨씬 어린 여성들이 많을 때는 기가 죽으며 뻘쭘해진다. 한두 살 차이는 신경 쓰이지 않지만, 6살 이상 차이 나는 여성, 태어난 연도가 8로 시작되는 여성을 우르르 만날 때면 가시방석이 된다. 이목구비의 비교는 제쳐두고 피부의 차이가 현저하다. 환하고 탱탱한 피부에서 40대와 50대의 차이가 또렷하다. 나만 50대이고 나머지 여성들이 모두 40대일 때는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심정으로 시간을 견딘다. 다음에는 왕언니 혼자 버텨야 하는 모임은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동생들은 어차피 비슷하게 늙어 가는데, 왜 신경을 쓰냐고 한다. '너희도 만 나이로 50살 넘어봐.'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40대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많고, 결혼이 늦어지며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많아서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장성한 자식이 있는 경우가 희귀하다. 20대 중반의 결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대다. 나이보다 '어떤 인생 시즌을 사는가'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빨리 늙어버린 기분이다. 나의 인생 시즌은 평균적으로 자녀가 독립을 앞둔 50대 후반에 가깝다. 객관적 지표보다 주관적 느낌이 앞서서 그런지 나이 주눅이 많이 들었다.     


"끝 사랑 보니?" 여동생이 이혼하고 연애를 시작했다는 언니가 요즘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주길래 잠깐 보았다. 50대 여성들이 화사하고 청초하게 등장한다.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주변의 반응을 살펴보니 출연자들이 관리를 잘하기도 했지만, 나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화면을 이쁘게 꾸몄다는 의견이 많다. 잠깐 봐도 피부에 잡티 하나가 없고. 이목구비가 주저앉지도 않았다. 당연히 외모를 보고 뽑았을 테니 최고의 미인이 나온 것은 당연한데, 보고 있는 장면이 '말이 되나' 싶기도 하다. 


거짓말 같은 외모의 출연진들은 호감을 가지고 설레어한다. 호감이 통하길 바라고 그, 그녀가 내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소망이 절망이 되어 버린 순간엔 영화 주인공처럼 아파한다. 사람의 감정은 나이로도 숨길 수 없나 보다. 살 만큼 살았고, 겪을 만큼 겪어서  감정을 삭이고 숨기는 일이 능숙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나는 솔로'에 나오는 청춘이나 '끝사랑'에 나오는 중년이나 설렘과 기대, 호감이 깃든 감정을 마주하는 태도는 똑같다.      


차라리 젊은 시절에는 어설퍼도 보호막이 두꺼웠다. 누가 공격이라도 하면 빠르게 방어막을 펼칠 수 있는 자존심이 있었다. 서투르더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뜨겁도록 맹렬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 차가울 줄도 알았다. 중년이 되고 50이 넘어가며 매일 드는 생각은 '내가 갱년기인가?, 갱년기에는 눈물이 많아지나, 사춘기에 눈물이 더 많을까, 갱년기에 눈물이 더 많을까.' 이런 종류들이다. 심지어 눈에서만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관절도 운다. 감정이 과잉되면 손목이 시큰하면서 뼈가 우는 기분이다. 가끔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이상 건강 신호일까 봐 걱정도 되기도 한다. 세상을 겪으며 두꺼워진 경계심이 인상을 바꾸었는지, 차가운 눈매는 차도녀 빰도 치겠는데, 눈가 주름 사이마다 감정이 가득하다. 어울리지도 않게 동공은 늘 촉촉하다.     


"얘들아, 왜 나이 드니 눈물이 많아지는 거니."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마찬가지란다. 설마 이런 드라마에 눈물이 흐를까, 싶은데 보면서 울고 있단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여 안심이 되지만, 유난한 기분도 든다. 음악 들으며 글썽, 미술 작품을 보며 촉촉, 이해 못 하는 오페라 보면서도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양반 수준. 이제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나려 한다. 그래서 안구건조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수분이 빠지는 나이라 건조해서 눈물이라도 필요한가 보다.      


엄마는 50대만 그런 게 아니란다. 80살이 다 되어가는 엄마 친구도 연인과 헤어지고 힘들어한단다. 우리 엄마가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신 줄은 몰랐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며 마음을 내려놓을 법한 연세에 사랑하고 헤어지며 아파하고 슬퍼할 줄은 더 몰랐다. 엄마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돌싱 프로그램보다 사연이 깊어서 공감이 되긴 했지만, 나이가 들면 감정이 굳어지는 줄만 알았지 인생 내내 똑같이 유지되는 줄은 몰라서 신기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어린아이가 되고 유치해지는 걸까. 그러다가 갓난아기가 되어 세상과 이별을 고하게 되는 건지. 몸은 벤자민이 사랑한 데이지처럼 점점 탄력을 잃어버리고 축축 처져서 중력과 가까워지다가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마음은 벤자민처럼 거꾸로 가는가 보다. 젊은 시절의 치기 건 장년의 자존심이건 꽁꽁 싸매던 보호막을 벗어버린 후, 태아의 여린 속살처럼 말랑해지고 가벼워지다가 세상에 남겼던 흔적을 거두어 사라지는 게 인생일까. 기대인지 희망인지. 버려야 하는 진실은 모르지만 버려야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꾸 여려지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인생일까.


나잇값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니 불혹과 지천명, 이순의 순서에 따라 어울리는 태도를 갖춰야 할 텐데, 겉은 나이를 증명하는 증거들이 차고도 넘치건만 속은 나이에 어울리는 흔적이 없어서 또 눈물 날 것 같은 밤. 나를 붙들어주는 중력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지 걷고 싶어졌다. 적당히 오른 취기에 또박또박 걷다 보니 힘을 잃은 다리는 풀리는데 마음 근육은 조금씩 단단해져 온다. 더운 밤공기에 피부는 푸석거리고 넓은 모공은 더 벌어져서 꼬락서니는 가관이지만 밤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에 마음은 청량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뻔한 결론을 떠올리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포기하는 느낌도 아닌데,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벼워진다.      

     

청춘을 닮은 뜨거운 낮을 지나 저녁을 거쳐 밤에 이른 시간이 중년의 여유로움 같아서일까. 보였으나 보이지 않는 어둠처럼, 있었으나 있지 않는 밤처럼 숨겨주는 시간이 포근하다. 주눅 들었던 낮의 시간이 지나간 열기처럼 희미하다. 환하고 선명한 하늘이 눈부신 낮도 좋지만, 어스름한 구석이 더 좋은 밤, 어플사진 보다 손대지 않은  사진이 나다워서 정감 있다. 시큰 거리는 손목이, 촉촉한 눈가가 나이만큼  살고 있는 거라며 인사를 건넨다. 빙그레 웃음으로 답하고 또다시 성큼 걸음을 딛는다. 


이전 15화 15. 연애만 하고 싶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