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들 사이에서 많이 오가는 질문이다. 속으로 그런다. '결혼생활 23년 했으면 됐지, 늙어서 고생할 일있을까?'
돈 벌기 힘들고 노후가 걱정이 되어서 정착하고 싶다는 여성들이 있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이 뼈아파서 그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안정된 사랑을 추구하는 여성들도 있다. 사랑받지 못했던 결혼생활의 결핍을 재혼을 통해 채우고 싶어 한다. 고독이 좋다 해도 오랜 외로움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니 그 사랑, 한 번은 주고받으며 살다가야 할 거 아닌가.
이혼녀들끼리 웃으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특히 여자입장에서는. 경제력이 없으면 이혼을 하려야 할 수 없다. 내 인생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하고, 딸린 새끼가 있으면 양육과 교육도 책임져야 한다. 이혼까지 결심했을 때는 전남편의 인간성이 바닥까지 보여서인데, 그 밑바닥 중에는 본인 핏줄 양육조차 나 몰라라 하는 배드파더도 있다. 엄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이혼한 여성들 중에는 경제력을 갖춘 경우가 많다. 실제 모임에 나가보면 여성들의 경우 정년이 보장된 전문직을 만나는 경우가 흔하다. 돈 잘 버는 여성들, 능력 있는 여성들도 많다. 돌싱 시장에 나온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좀 더 나아 보인다. 남성들도 저항 없이 인정한다. 모임에서 보면 여자들이 미모뿐 아니라 현실 조건이 남자보다 좋다고. 그런 여성들이 노년에 운 나쁘면 삼식이 밥 해주면서 병간호를 할지도 모르는 재혼을 하려고 할까? 차라리 남자 없이 혼자 사는 삶이 속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싱글로 지내온 친구들도 흔하다. 요즘은 비혼주의자도 많아졌다. 열심히 일을 하느라, 또는 청춘을 즐기다 보니 결혼시기를 놓쳤다고 말하는 후배들도 많다. 그녀들은 이제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덧 차버린 나이를 생각하다가 마음을 비운다. 어쩌다 인연이 되어 연애는 할지 몰라도 결혼은 어렵다고 말한다. 마흔도 젊은 나이라고 하지만, 결혼과 육아를 생각하니 현실이 복잡해져서 안 되겠단다. 충분히 이해된다. 이제껏 혼자 살아오며 혼자가 익숙한데 이 나이에 누구와 맞춰가며 사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가끔은 생각을 뒤집어보고 싶다.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서적을 보면 100%를 위해서는 120% 이상을 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전교 1등의 각오로 공부를 해야 전교 10등 안에라도 들어보는 것. 내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의 100%가 아니라 120%를 준비해야 겨우 90%를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최대 능력치 이상을 해야 겨우 목표에 도달할까, 말까 했던 일들이 인생에는 비일비재했다.
관계는 어떨까. 나 혼자 열심히 하면 그런대로 결과가 나오는 목표나 성취가 아니라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들, 과정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상대는 그렇지 못해서 속상하고 서운한 것이 연인의 일이다. 마음의 크기와 깊이가 서로 다른 장르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토록 엇갈릴 수 있을까 싶은 것이 애정의 영역이다.
알면서도 뒤집어 보고 싶은 이유는 연애를 전제로 하는 애정과 결혼을 조건으로 하는 마음의 태도는 다를 거란 의심이 들어서다. 1부 1 처제의 결혼제도는 우월한 남자가 다수의 여성을 거느리는 것을 막기 위한제도라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남자에게만 유리하지 않을 것이다.법과 제도를 통해 부부 모두를 보호하는 장치가 결혼일 것이며, 보호해 주는 만큼 책임도 따를 것이다. 결혼 후 이혼보다는 연애하다가 헤어지는 것이 모든 면에서 쉽다.
연애하고 헤어지는 것보다, 책임감 있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애보다는 결혼이나 재혼이 좀 더 진지하면서도 조심스러울 것 같다. 단기 인연으로 스치는 사람에게 하는 태도와 장기간 오래 만날 사람에게 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을까. 식당도 뜨내기손님과 단골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처럼.
다른 생각을 해볼까. 연애는 사람만 보고 할 수 있지만, 재혼은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하다 보니 어쩌면 연애를 하는 것이 오직 사람만 보고 하는 순수한 사랑일 수도 있다. 재혼은 생각해야 하는 현실 조건이 많다 보니 넘어야 하는 산도 높을 거다. 이리저리 따져보는 사랑이 어디 순수하겠냐고.
연애 상대를 찾기도 어려운 마당에 결혼 혹은 재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사람을 더 못 만날 수도 있겠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하게 만나보는 연애를 해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는데, 재혼을 상대로 만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기라도 할까. 이혼을 거치며 소심해진 심장은 선택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다양한 재화 속에서 선택이 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연애는 회피하기도 좋다. 사귀다가 아닌 것 같으면 관두고, 멀어지고 싶으면 연락 안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도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가벼운 연애였으니까. 애써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도 노력할 이유도 없다. 처음엔 몰랐는데 사귀다 보니 안 맞았던 것뿐이니까. 실제 체감온도로 판단해도 장기간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으나 극소수.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1년 이하의 단기 연애 통계가 높긴 했다.
재혼은 복잡해!
연애도 못하는데 재혼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만나도 그만 헤어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벼움의 장점이 있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것도 없을 거다. 행여 어긋나더라도 상처 또한 깊지 않을 거다.
단점이라면 가벼운 만큼 점점 짤막짤막 해지다가 연애도 썸도 아닌 그저 그런 미지근한 상태 정도를 이어가고, 나중에는 실패의 습관이 역시 나란 사람에게 연애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포자기하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은 빨리 흘러 나이는 먹어가고, 점점 연애는 남의 일이 된다.
이 나이에 가벼운 연애는 싫어!
진지하게 재혼을 염두에 두고 만난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진중한 무게감은 오히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불러와서 또 뜻대로 안 될 수도 있다. 나는 120%를 하는데 왜 상대는 50%도 안 보여주냐며 속상한 일도 생길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려는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또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만남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흘러 연애도 힘든데 재혼은 더 어려움을 체감하며 남의 일이 된다.
연애냐, 재혼이냐는 목적과 목표의 차이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차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패의 경험이 더 단단한 토대가 되어 결국은 좋은 사람과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현실 조건에 더불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마음 아파 사람 사이의 일에 더 소심해지는 사람도 있다. 소심함은 진중함이 아닌, 우유부단함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장바구니에 이 물건 저 물건 담아두고 이번에는 이 물건을 사 보나, 저 물건을 사 보나 고민을 하듯이 이번에는 이 마음을 먹어보았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 관두고 저 마음을 먹어 보다가 말지도 모른다. 장바구니 썸은 가벼워서가 아니라, 소심하고 우유부단해서 그럴 뿐.
다양한 경우의 수를 떠올리다 보니 더 복잡해져 버렸다. 마음은 그랬다. 연애만 생각하면 한없이 가벼울 수도 있겠다고. 책임의 지분이 적은 만큼 진지하지 않을 수도 있고 회피하기 좋겠으니 연애만 하겠다는 생각만 하지 말자고. 사람에겐 주어진 책임만큼만 책임지는 습성이 있으니 책임감을 생각하는 사랑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비혼, 사실혼, 동거가 대세이긴 하지만, 결혼이란 제도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그래야 먹는 마음부터 다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