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서 Oct 10. 2024

요즘 결혼식

오랜만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불편한 원피스에 자켓을 입고 강남까지 다녀오려니 귀차니즘이 강렬하게 발동했지만, 결혼이 귀한 시대이니 맛있는 밥이라도 먹고 오자며 마음을 도닥였다. 작년에 직장 후배의 결혼식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번 결혼식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사촌동생의 결혼식이다. 사촌이란. 어른들에게는 가까운 친척이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남보다 먼 관계다. 어려서 명절 때 잠깐 얼굴 보고 만 사촌을 어른이 되어 자발적으로 만난 기억이 없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핏줄은 핏줄인가 보다. 의무감에서라도 결혼식에는 참석을 하게 되니 말이다.



내가 언제 결혼을 했더라. 벌써 27년 전인가 보다. 많이 긴장에서 그랬는지 어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결혼식. 인생의 강렬한 경험이라서 그런지 그날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선명하다. 어떤 드레스를 입고 어떤 표정이었는지. 공간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꽤나 또렷하다.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축가를 불러준 기억이 난다. 흰 폴라티에 청바지, 청치마 맞춰 입고 와서 선생님 결혼식 축가를 불러준 그 녀석들도 이제 곧 마흔인데 잘 살고 있을까..


돌아가신 삼촌, 아빠의 부재 때문인지 동생은 많이 울었다. 신부는 우는 모습도 아름답지.

결혼식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져서 딱딱한 주례사가 없었고, 가족들의 편지 낭송이 있었다. 친구들의 축가 또한 발라드부터 댄스까지 다양한 콘셉트이었고, 신이 난 신부도 발랄하게 환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고 활기찬 결혼식을 보고 있으려니 영화 어바웃타임이 떠올랐다. 다시 결혼한다면 신나게, 발랄하게 결혼하고 싶단 생각이 스친다. 영화처럼.



코로나 이후 웨딩홀이 많이 사라져서 장소를 잡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사촌동생의 결혼식 장소가 호텔이 아니라서 미니결혼식을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미니스러운 곳은 아니었다. 내부는 요즘 카페 분위기. 화려한 교회스타일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민 공간이 인상적이다. 좁은 통로를 통해 들어가서 반짝반짝 빛나는 홀이 열리는 콘셉트가 조용히 초대받은 비밀스러운 파티에 온 기분이다. 통로를 따라 전시된 신랑신부의 사진을 보는 일 또한 행복을 예감하게 한다.



결혼식장에 가면 이제는 엄마로서 고민을 하게 된다. 아들들의 결혼은 본인의 몫이겠으나, 만약 하게 된다면 이런 곳에서 하면 좋겠구나, 생각한다.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를 떠올리며 엄마는 얼마를 더 벌어야 하나, 현실문제도 예상한다.



결혼식을 다 보고 나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구조라서 밥만 먹고 갈 수 없다. 신랑 신부를 축하해줘야만 한다. 식이 끝나야 뷔페를 가져와 먹을 수 있다. 오자마자 축의금 내고 바로 밥 먹는 결혼식은 즉석 요리 같다. 느긋하게 즐기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든 의도가 마음에 든다.  공간이 협소해서 이동이 신경 쓰이지만, 음식은 맛이 있다. 적당하게 잘 배합된 메뉴들이 다양하게 먹기 좋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웃음이 터진다. 나이 오십을 넘은 나도 늙었는데 70살 까지는 늙은 것도 아니란다. 80살을 넘기니 확실히 늙은 티가 난다나. "저도 늙었어요. 주름이 많은걸요" 말하면 70살까지 주름은 주름도 아니라는 외숙모. 80살 넘어야 노화가 체감된다고 하니, 앞으로 30년간 젊은이로 살아도 될 것 같다.



환갑을 넘긴 외숙모, 70살 가까운 외숙모들이 동안이시다. 왜 전혀 늙지 않으셨는지 비결이 궁금하다.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 몰라보고 갈 정도. 50대라서 늙었다고 혼자 쭈글거렸는데, 70살 가까이 되셔도 팽팽한 피부로 원피스 입은 외숙모를 보니 한참 어린 조카는 관리에 신경을 쓴다면 좀 더 젊음을 누려도 되겠다.



살짝 긴장하고 갔다. 엄마의 유일한 자매인 이모는 내 이혼의 이유까지 알고 계시지만, 다른 어르신들은 이혼한 일을 모르시는데, 왜 김서방 하고 같이 안 왔냐고 하실까 봐.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서 가족 행사에 참여할 때면, 남편 없는 티가 날까 조심스럽다. 나는 알려도 그만인데,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엄마를 헤아리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누도 김서방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오랜만의 결혼식이라 혼자 재미있는 상상에 빠진다. 김서방 말고 다른 성씨의 서방을 데려가서 현재 내 서방은 이 사람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그럴 리가 없어서 상상은 훨씬 더 재미있다. 상상한 김에 하나 더 해보자. 영화처럼 두 번째 결혼식을 한다면? 영화 '대도시사랑법'처럼 신랑 신부가 춤을 추면서 결혼을 하는 장면까지 진도를 빼니, 이 나이에 참 꼴불견이겠는데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조심스러운 걱정과 상상을 얼른 날리고 오랜만에 어르신들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오랜만에 듣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막내 외삼촌  외숙모가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고, 이제는 아흔이 다 되셔서 귀가 안 들리는 큰 외삼촌에게 통역을 해주시는 큰 외숙모를 지켜보는 일도 즐겁다. 사이좋은 엄마와 이모의 케미도 보기 좋다. 사이좋은 육 남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하는 어르신들처럼 나도 유쾌하게 늙고 싶단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민다. 


젊은 부부의 새로운 출발을 잠시나마 지켜보는 것도 좋았지만 언제 죽어도 그만이라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끼어든 시간이 더 기억에 남을 결혼식이다. 오랜 시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노부부의 모습에 미소가 멈추지 않은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갱년기 인사이드아웃 :  기쁨과 슬픔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