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한다
싱글들이 유머 삼아 자주 던지는 말이다. 사랑해 주는 이성이 없는 내가 서글퍼질 때, 씩씩하기 위해 애쓰며 하는 말이다. 틀리지는 않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니 괜찮은데, 내가 나를 안아주라는 조언을 들으면 서글프다. 인간도 동물이라서 스킨십을 해야 하는데, 혼자 살아서 불가능할 때는 스스로 쓰담쓰담해 주는 것이 좋단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나를 껴안으며 토닥토닥하면 기운이 나긴 하지만, 상황을 신경 쓰며 살고 싶진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 나를 사랑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긴 하다. 타인을 마음에 들이고 맞춰가는 일이 쉽지만은 안다. 사람을 신경 쓰는 일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 있을까. 사람으로 인해 마음 다치느니, 마음 편한 게 최고라며 혼자인 나를 위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함께도 좋지만 혼자가 좋을 때도 있다.
혼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마음의 흉터 때문인 것도 같다. 싱글들의 모임에서 친분이 쌓이며 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처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많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경험이 선물한 에너지도 있지만, 심하게 다쳐서 겁을 내는 것마냥 아픈 기억이 어렴풋 서려 있기도 하다. 아픔은 겪지 않은 타인에게는 통계지만, 경험자에게는 100%이듯이, 사람을 겪으며 생긴 상처는 인생의 걸림돌로 자리 잡는다. 화자인 당사자는 오히려 모르고 말하는데 청자는 흉터가 관계를 어떻게 휘젓고 있는지 보일 때도 있다. 남의 상처는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내 상처는 차마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일 거다.
걸림돌 앞에 멈추는 사람도 있고, 용기 내어 건너다가 다시 회귀하는 사람도 있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폴짝 뛰어넘어는 사람도 있을 텐데 본인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는 잘 모를 것 같다. 걸림돌을 가뿐하게 넘어가는 유형 중에는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시도해 보는 사람도 있겠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와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스스로 놀랄 수도 있겠다. 존재란 고정된 틀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유연하게 형성되는 것이 맞는가 보다.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남쪽으로 가는 일이 일상의 루틴처럼 가벼워졌다. 계획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주말에 공연을 보거나 독서 모임을 준비하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코레일 어플에서 기차를 예매하거나 저렴한 비행기티켓을 검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번 주는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찾다가 오전 비행기를 예약해서 그의 퇴근 시간보다 일찍 도착을 할 예정이었다.
티웨이 비행기가 거의 두 시간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의 계획대로 되었을 텐데, 유례없는 지연으로 이벤트를 온전하게 즐기지는 못했지만 혼자 감동하건, 함께 즐거워 하건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혼자 들어서야 했던 공간을 함께 들어서려는 순간부터 준비된 그의 이벤트는 막연했던 사랑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해주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기자기함에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구나.' 자각이 체온처럼 또렷하게 전해졌다.
현관문 손잡이에 붙은 '** 좋아'부터 시작해서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만들어 놓은 비타민 콤부차에 붙은 포스트잇. 건강 챙기라며 주문해 둔 한약에 붙은 메모에 엄마 소화제까지 챙기는 살뜰함. 거울과 옷걸이에 붙은 재미있는 멘트까지. 출근하기에도 바쁜 아침에 이런 이벤트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 기분이 활짝 펴진 만큼 감동이 몰려왔다. 아기자기하게 잘 챙기지 못하고, 이벤트에 약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미처 생각도 못할 일이라 감동은 더 컸다.
사랑을 실패한 경험이 걸림돌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걸림돌에는 내가 자초한 필연의 지분도 있고 우연이나 운으로 부를 수 있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실패는 의연할 수 있는 내성을 길러주기도 했지만, 절실함을 앗아갔다. 인연이란 내 뜻이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 소극적인 태도가 편해졌다. 언제 어긋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준비시키곤 한다. 부여잡기보다는 흐르는 대로 살고 싶어졌다.
혼자 처리했던 방식에 그가 나타나며 내가 달라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나를 잘 모르면서, 잘 안다고 여기고 살았는데 여전히 잘 몰랐나 보다. 그와 시간을 보내며 그전에는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자각할 때가 있다. 어쩌면 처음 마주하는 경험이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지도 모른다. 살가우면서도 온전한 그의 마음씀에 과거의 방식은 흩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가 보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흐를까? 나도 많이 궁금해진다.
그의 메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