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삭 속았수다 때문에

화해의 시간

by 루서


#아들 #화해 #가족 #폭삭속았수다 #오애순양관식 #폭삭속았수다때문에



부모라면 응당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고, 한없이 희생해야 하는 존재.라는 정서가 우리 내면에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는가 보다. 그래서 가끔 모든 것을 내어주지 못하는 부모에게서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는가 보다. 혹은 부모가 되어서 내 새끼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미안해지는가 보다.



'글쓰기 최전선'에서 은유작가는 아이의 교육비에 돈을 쓰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배움이 돈을 더 쓰는 엄마였다고 고백했는데, 그 고백에 내 코가 시큰거렸다. 아이에게 좋은 것은 다 주는 엄마, 아낌없이 다 주어야만 사랑 많은 엄마라는 인식 사이에서 이제는 그리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아이의 교육비 보다 내 배움과 취미를 위해 돈을 쓰고 싶은 엄마였기 때문이다.



아들들이 대학과 대학원 졸업을 마치는 2년 뒤에 내 인생의 숙제는 모두 끝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었다. 부모 자식 간에 '할 만큼 했다'라는 수준은 부모냐, 자식이냐에 따라 다를 텐데, 부모인 나는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여긴다. 내 수준에서 최선을 다했다. 중 고등학생 시절 사교육을 많이 시켜준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원한다고 비싼 옷을 사준 부모는 더욱 아니며, 미리 증여를 해 줄 재산도 없는 데다가 아이들 용돈도 넉넉하게 준 적이 없어서 아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비교하면 '해준 게 없는 부모'일 수도 있지만, 해 줄 수 없다고 빚내서까지 아이들을 서포트하거나, 재테크를 포기하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지 않다. 아껴 아껴 모은 돈 아이들에게 홀랑 퍼주는 부모이고 싶지도 않다. 집 팔아서 유학비 대주는 오애순 양관식은 아니다.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똑같다. 아들 둘 키워봤자, 엄마 닮아서 살가운 구석도 없고, 독립을 하건 결혼을 하건 어차피 남의 남자 될 녀석들이니, 애틋한 애정으로 붙들어 끼고 살고 싶지도 않다.



폭삭속았수다를 보면서 불편했던 건, 그래서였을 거다. 오애순 양관식처럼 모든 것을 다 퍼주는 사랑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지 못한 부모라는 자각이 나의 어딘가를 푹 찔렀다. 관식이의 애순이에 대한 사랑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변함없이 단단하기를 바라는 로망이 있듯이 자녀들도 아낌없이 다 주는 부모의 사랑을 로망 하지 않을까. 짜증이 나도록 미안해하면서 모든 걸 다 퍼주는 부모라면, 나도 금명이처럼 효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들지 않을까.



한없이 순수한 사랑은 연인 사이뿐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로망일 텐데, 막상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서글펐다.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눈물 펑펑 나도록 슬프면서도 빛나도록 아름다운 인생의 마지막이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동안 보아 온, 남녀 간의 로맨스는 동화이자 환상이라 현실을 자각하는 피부를 뚫고 들어오지는 못했는데, 이 드라마는 자꾸 파고들어 아프게 만들었다.



다른 한 편으론 괜스레 우리 엄마가 미워졌다. 아이들에게 공감해 주고 보듬어준 엄마가 아니고, 한없이 사랑해 준 엄마가 아닌 건,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무뚝뚝하고 성격 강한 엄마 탓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었던 걸까. 내가 양금명도 아니면서 오애순과 거리가 먼 우리 엄마가 괜히 서운하게 느껴졌다.



미움에 대한 이유를 찾다가 나를 반추해 보니,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했는지가 직시되었다. 엄마가 내게 했던 양육방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아이들에게 인생을 올인하다시피 해서 키운 시절도 있었지만, 사춘기를 맞으며 마음을 내려놓은 이후, 아이들을 떠나보낼 궁리만 하며 얼른 해치워야 할 숙제로만 여긴 것은 누구도 아닌 나였다.



허전해졌고, 허전해진 마음이 살짝 우울했다.


' 나 엄마 맞나.
어차피 떠날 아이들을 왜 그리 못 내보내서 안달이었을까.'

작은 아이가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를 하면서 큰 아이도 빨리 독립시킬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아이를 보았다. 엄마보다는 관리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큰 애가 다시 보였다.



대학원을 다니느라 알바를 하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쪼들린 첫째는 요즘 거의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지낸다. 비싼 학비를 내어준 엄마에게 무엇 하나 쉽게 요구하지도 못한다. 그 나이가 되어서 모든 것을 부모 주머니에서 해결하려니 본인도 면목이 없나 보다. 아이 마음이 읽히니, 상황이 마음 쓰이며 아이가 한없이 안쓰러워 보인다.



아이에게 마음껏 해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내 수준에서 해 줄 것은 뻔해서, 말이라도 따듯하게 해려고 노력 중이다. 등이라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있다. 툭 내려두고 말이라도 다정하게 건네다 보니 조금 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말이 태도를 바꾸고 있다.



그동안, 아이의 태도나 생활방식이 답답해서 엄마도 답답한 소리만 반복했다. 부모란 자식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해야 하는 사람인데, 나도 조건에 따라 사랑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 중이다. 아이가 내 마음에 차면 좀 더 사랑하고, 덜 차면 마음을 거두면서.



요즘은 아이와 화해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지낸다. 마음에 안 드는 패턴은 똑같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거두고 다정하려고 노력한다. 엄마 혼자 하는 화해라 해도, 서둘러 독립을 시켰다면 화해할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관리자로 군림했던 엄마만 기억하며 마음에 앙금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엄마에 대한 잘디 잔, 앙금들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아들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냄새나는 방에 들어가서 세탁한 옷과 세탁해야 할 옷이 구분되지 않아도 눈을 감고 참아야 할 것이다. 끈끈한 얼룩이 남은 책상은 공간이 없어서 치워주기도 어려울 것이고, 엄마가 아니라면 베개커버나 이불을 빨 일도 없을 것이다. 새벽 출근 하는 바쁜 엄마, 일어나자마자 강아지 산책까지 시켜야 하는데, 어젯밤 야식을 먹은 아들의 설거지 앞에서 짜증이 날 것이고, 아무리 말해도 닦지 않는 식탁부터 재빠르게 닦느라 촉박한 시간에 쫓겨 시계를 한 번 더 쳐다봐야 할 것이다.



아이와 부대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는 게 인생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 되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다른 문제가 아닌, 내 새끼라 다행 아닌가.



가족 사이에 녹지 않을 빙하를 감추어 두고 마음에 보이지 않는 얼음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는 따스한 온도로 녹이며 사는 게 낫다. 마음에는 온난화가 필요하다. 오랜 시간 얼어서 녹을 줄 모르는 작은 얼음 조각을 꽁꽁 싸매고 사는 것보다는 품고 보듬으며 사는 게 낫다.



사랑하지 않아서, 사랑할 줄 몰라서도 마음에 남지만 미안해서도 마음에 남는 것들이 많다. 마음에 앙금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이나마 후회 없이 지내기로 한다. 혼자 하고 말더라도 화해의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63회 진해 군항제 : 봄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