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 첫 봄꽃
벚꽃으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진해라는데 진해에서 꽃구경을 해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 진해 군항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듣거나 보기만 했을 뿐. 작년 겨울부터 김해에 자주 내려오며 바다를 보기 위해 처음 가본 것이 전부였다. 드디어 진해 벚꽃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살다 보니 해보지 않았던 머나먼 일도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설렘에 마음이 가득 부풀었다. 하필 주말에 춥다고 해서, 살짝 걱정될 뿐.
꽃구경은 낮에 하는 건 줄 알았다. 가끔 봄밤의 운치를 즐기고자 술 한 잔 걸치고 우연히 보기는 했지만, 마음먹고 하는 꽃구경의 시간은 낮이었다. 그는 야경의 벚꽃이 더 이쁠 거라 했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 진해를 구경하자던 그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깊은 밤의 벚꽃이 낮보다 아름다웠다. 조명에 하늘 거리는 벚꽃은 연약하면서도 우아했다. 환한 낮의 벚꽃이 웨딩드레스처럼 화려하다면, 밤의 벚꽃은 하늘하늘한 자태가 요염한 여인 같다. 어쩌면 햇살 아래 눈부신 찬란함보다 어두운 밤에 조명을 받은 농염함이 더 아름다운 것도 같다.
아직 서울에는 소식을 알리지 않은 벚꽃이 김해와 진해에는 가득했다. 쇼핑몰 주차장에도 벚꽃은 흔했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겨울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라 손 끝이 차갑게 시렸는데도 꽃은 봄을 알리고 있었다. 올해 처음 보는 벚꽃이 유난히 반가웠다. 동네에 흔하게 핀 꽃이 아니라, 기차 타고 내려와서 그와 함께 보는 꽂이라서 그랬나 보다. 아직 쌀쌀한 한기에 나무에 앉은 하얀빛은 잘못 내린 눈송이처럼 보여서, 알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활짝 피어있는 봄의 소식이 맞았다. 이미 봄은 소리도 없이 곁에 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게 익숙해진 우리들의 시간처럼.
늦은 밤 시간에 찾은 진해였는데도 갓길은 온통 주차장이었다. 군항제가 있는 시내 골목에 주차를 하고 주변을 걸었다. 사람들이 거리마다 가득했다. 바닷바람이 추워서 다시 겨울을 맞이한 듯 한기가 가득한 도심은 차가운 바람의 밀도만큼이나 사람으로 붐볐다. 봄 축제의 주인은 벚꽃일 텐데, 벚꽃은 보이질 않았다. 이곳이 축제의 장소임을 알리는 대형 천막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했고, 사이사이 밀려드는 사람들 행렬에 벚꽃을 잊어버렸다.
축제의 기쁨보다 벚꽃 고유의 자태를 누리고 싶었다. 여좌천로망스거리가 예쁘다고 하여 장소를 옮겼다. 내리자마자 펼쳐진 소담스러운 장면에 할 말을 잃었다. 거대한 공원을 따라 화려하게 펼쳐진 여의도의 벚꽃도 감탄스러웠지만, 좁은 천을 따라 펼쳐진 여좌천의 벚꽃길은 앙증맞고 귀여웠다. 여의도가 여왕이라면 이곳은 공주님의 길처럼 사랑스러웠다. 공주님을 보좌하면서 더욱 빛나게 해주는 시종처럼 과하지 않은 장식물의 조명이 벚꽃을 탐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좁은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테마에 따라 달라지는 아이템에 '로망스'란 단어의 온도가 절로 체감되었다. 어떠한 사랑이건 사랑이 활짝 피어날 수밖에 없는 풍경이 눈에 가득 펼쳐졌다.
밤의 피어난 벚꽃의 자태를 넋이 빠진 듯 감탄하다가, 욕심이 나서 경화역에 들렀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붐비는 진해의 밤거리. 언젠가는 기차가 지나갔을 아담하고 소박한 역에 빛나는 벚꽃을 보고 있으려니, 한 때는 봄이었을 그 시절이 생각나서 추억에 젖어들 것 같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내 인생의 봄인 것만 같다. 어린 시절에도 아름다웠을 벚꽃이었을 텐데, 벚꽃의 아름다움을 모른 채로 봄을 보냈다. 삶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벚꽃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찾아들었고, 그때부터 봄이 좋았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늘 봄을 기다렸고, 봄이 온 다음에야 해가 바뀜을 실감하곤 했다. 벚꽃과 함께 찾아오는 봄을 알아챈 순간부터 인생의 봄도 같이 찾아든 것만 같다.
화려한 봄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봄바람은 매서웠다. 바람의 세기는 여러 겹을 걸쳐 입어도 혹독하게 추웠다. 바다의 기운이 담긴 거센 바람은 야단을 치는 듯도 했다. 인생의 봄은 저만치 지났는데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는 나이 든 여인에게 인생의 봄이 지난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냐며 한 소리 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이제야 깨달은 봄을 충분히 누리라며 격려하는 것도 같았다. 거센 바람에 하늘거리는 벚꽃의 응원이 그래 보였다.
살다 보니 어리석을 때가 많았다. 가장 빛나는 시즌을 모르고서 산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아름다웠던 순간임을 안다. 한창 봄이었을 때, 봄을 모르고 살다가 봄이 지나고 나서야 놓친 봄이 귀했음을 알았다. 이제는 순간이 지닌 소중함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다. 과거의 추억보다, 오지 않은 미래의 순간보다 발 닿고 선 현재가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나간 시간에서 찾는 영광이 의미 없으며, 다가올 시간이 지금과 다르지 않으리란 자각도 할 수 있다. 한 때 피어나고 떨어지면 그만인 꽃잎이 지닌 의미. 그래서 아름다운 짧은 봄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의 봄이 지났음을 왜 모를까. 그래도 봄처럼 살고 싶다. 모두가 피어나서, 나 하나 피어난 것은 눈에 띄지도 않지만, 무더기로 피어서 더 예쁜 꽃, 잠깐 피어서 더 간절한 벚꽃을 해마다 기다리듯이, 짧고 작은 기쁨에도 즐겁고 기분 좋은 봄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