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그 모습이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 불행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나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출발해서 경제적으로 빠듯하다 보니 악착같아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으나, 아껴야 하는 과정을 즐기며 살기도 했다. 남편은 충분히 가정적이라서 아내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라 마음고생도 없었다. 그런 남편과 아들 둘로 구성된 우리 네 가족이 불행하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남편을 신뢰하기도 했다.
불행해서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왜 이혼을 했을까?
사주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니, 운명적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두 사람의 노년이 격각으로 각자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도 있을 테고, 전남편의 대운 흐름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나의 말년운과 삼재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주는 결과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이혼의 이유는 중년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대한민국 자녀 양육의 끝판왕인 입시를 기점으로 엄마들에겐 생각해보지 못한 시간이 생긴다. 아이 중심으로 돌았던 일과가 갑자기 느슨해지며 감정적으로 개운한 만큼 허탈해지기도 한다. 아이가 대학을 간 이후에도 코칭하는 부모가 많다고는 하나, 아이의 대입과 함께 양육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대폭 줄어들면서 부부의 관계도 변화가 시작된다. 가족을 묶었던 강력한 끈이 해제되며 시간과 생각이 많아진 엄마 앞에 삶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남편과 가까워지며 부부 관계가 돈독해질 수도 있고, 부모의 역할이 가벼워지다 보니 부부의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벼워지자 엄마의 타이틀이 아닌 '나'로 살고 싶어졌다. 시작은 아이의 사춘기 부터였다. 엄마의 관심이 아이를 옥죌 거라는 걱정과 실망하기 싫다는 두려움으로 아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엄마로서 할 일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엄마로서가 아닌 인생을 생각하게 됐다. 나만의 일에 집중하고 싶었고, 나를 위한 일들로 바쁘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여겼다. 엄마로서 약 20년을 성실하게 살았으니까.
아이가 안 하는 공부를 차라리 엄마가 하겠다며 대학원을 다녔고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덕질도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귀가해서 자료 정리나 리포트로 바쁜 와중에도 1년에 100회 정도 공연을 보았다. 퇴근하면 바로 집에 오던 사람이 하루도 집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살다 보니 자아 효능감이 솟구쳤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해도 여러 가지 일을 다 할 수 있구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에 세상이 재미있었다. 아이에 대한 관심을 나로 돌리니 할 수 있는 일, 해낼 수 있는 일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몰아치는 파도처럼 경험했다.
황홀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남편을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의 시간만 반복해 온 나를 남편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여겼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충분히 동의했으리라 짐작했다. 연애하고 결혼해서 함께 한 시간이 25년이니, 이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내 생각에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더랬다. 충분히 이해해고 있기에 아내에게 음악 공연을 권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의 바쁨이 그에게 분노의 이유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불만이 있다면 늦은 귀가뿐일 거라고 예상했다. 밖으로만 돈다며 불만을 표시하긴 했으나 강력한 항의는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나에게 집중하는 사이 남편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는 나와 헤어지길 원했다.
정도를 넘긴 아내의 덕질에 화가 솟구치고 질투가 난다고 했다.
비혼도 많고, 딩크족도 많다. 자녀출산은 결혼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가정은 자녀 중심으로 움직인다. 자녀가 성장을 하고 부모의 손길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되는 시기가 되면 자녀로 향한 집중도는 희미해진다. 이 시기에 부모 또한 체력이 쇠퇴하며 대체로는 차분한 중년을 보내는 게 순리일지 모르겠다.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어딘가에 열정을 쏟고 싶었다. '엄마'로 살아오다가 돌봄의 무게가 줄어들자 내 위주로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하고 싶었던, 아이들보다 아내가 더 소중하다고 말해왔던 남편의 욕망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부부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어야 했는데, 사이좋은 부부니까 이해해 줄거라 믿고 있었던 나의 착각은 이혼을 불러왔다.
남편을 살피지 못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본인의 욕망에만 충실했던 나의 잘못만 있을까?
둘 다 현명하고 지혜로웠더라면 슬기롭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이혼하지 않고도 중년 부부의 삶을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난 결국 잘못한 걸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혼이 잘못이라거나 실패만은 아니다. 이혼도 슬기롭고 현명한 선택의 하나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 양육의 시기를 마치고 중년 부부가 겪어야 할 과정들을 좀 더 지혜롭고 슬기롭게 해냈더라면, 아쉬움은 있으나 결론에 대해 크게 후회를 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사주처럼 그와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중년 이후 서로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사람들끼리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이혼의 상처가 치유된 후 생각해 봐도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선명하지 않다. 함께 사는 부부가 모두 사이좋은 것도 아니고, 헤어진다고 해서 원수처럼 지내지도 않는 것처럼.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불행의 이유가 제각각이듯이 이혼의 이유도, 부부 관계도 꼬집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할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았으나 이혼한 듯 사는 커플도 많고 이혼을 했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커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남녀 관계 혹은 부부 사이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아이와 멀어질수록 내 옆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볼 것
눈에 훤히 읽히는 남편, 오랜 시간 함께해서 다 알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것이 사람이다. 내 옆지기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심은 줄어든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항상 타인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익숙하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궤도에서 이탈하고 부부만 궤도에 남았을 때, 그 궤도에서 자기의 주기대로만 돌면 더 외롭다. 같이 맞물려 돌아야 일상이 유지된다. 그와 나의 궤도를 다시 살펴보고 어울려서 돌아야 이탈도 충돌도 없다. 오래되어 익숙하다고 신경 쓰지 않으면, 관계란 겉돌기 쉽다.
시큰둥한 부부, 있으나 없으나 별반 상관도 없는 사람, 오히려 남보다 못해서 원수 같은 나의 배우자.
함께 궤도를 돌아야 한다면, 중년 부부에게 찾아오는 위기를 잘 극복해야 노년도 부드럽게 맞을 수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도 좋고, 새로운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내 옆에 오래 있어준 배우자가 나와 함께 하길 원한다면 내 짝꿍이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외로워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일도 나를 위하는 만큼 소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