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면 모두가 공감할 감정이 있다. 부모님이 그 어떤 불편도 겪지 않게끔 효율적인 코스로 안내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다. 이를 덜기 위해 패키지여행을 가는 선택지도 물론 있지만, 나름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전공하고 도쿄만 3번째 방문하는 것인 나는 과감히 자유 여행을 추진했다.
그렇게 도쿄역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구글맵을 켰다. 저장해 둔 맛집 리스트 중 웨이팅이 없는 식당을 찾아갔고, 일사천리로 식사를 마치고는 또 지체 없이 지도를 펼쳤다. 다음 행선지로 가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현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자 핸드폰 화면에는 익숙한 파란 점선이 생겼다. 직진하다가 좌회전, 여기서부터 직진하다가 우회전, 또 직진하고 꺾고… 그렇게 도쿄의 고층빌딩 사이 대로변을 10분쯤 걷다 보니 슬슬 똑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길을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면 죄다 똑같은 회색 건물들 뿐이라, 어디서 좌회전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 행군이 슬슬 지루해지던 찰나, 아빠는 걸음을 멈추곤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큰길로는 많이 걸었으니까,
한 블록 뒤로 걸어가 보는 건 어때?
머릿속 전구에 불이 딱- 켜지듯 솔깃한 제안이었다. 조금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이 여행의 묘미니까, 좋아!라고 신나게 답하며 우린 방향키를 꺾었다. 항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가가 된 마냥 짜릿한 쾌감이 올라왔다.
직진이 아닌 우회전으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걸음을 이어가자, 점차 타이어와 콘크리트의 마찰음 보다 사람들의 소곤이는 말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곤거림의 끝에는 너무나 평범한 도심의 고층 빌딩 사이, 비밀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무채색의 빌딩들 속에서 오색빛깔 현란한 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풍경을 마주한 순간, 마치 흑백 세상의 문을 열고 나와 컬러로 된 세상을 처음 만난 영화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된 기분이었다. 도로시가 느꼈을 충격과 감격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빨간 천막과 등불, 하얀 얼음에 채도 높은 시럽을 뿌려 먹는 일본식 빙수, 흐르는 물 위의 장난감을 뜰채로 뜨며 옛날 낚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까지. 각각의 게임에 집중해 있는 이들 뒤로는 부모님이 서서 '간바레!(힘내!)'를 외치는 풍경이 이어졌다.
그 풍경 속에 한참을 구경하고 나오니 어느새 골목의 끝에 다다랐는데, 그곳에서 이 정체 모를 축제의 정보가 적힌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일본어로 적힌 내용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면서 우린 또 한 번 짜릿한 쾌감에 절여지게 되었다. 이 축제가 바로 오늘, 오직 단 하루만 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도에 나온 대로변만 따라갔다면 이 축제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우연한 발걸음이 이끈 운명적인 만남에 감동이 밀려왔다.
이 날부터 나는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갖게 되었다. 5분 느리게 돌아간 길에서 5배 이상의 행복을 얻는다는 이상한 명제를 증명해 내는 마법. 방황 속에서 불안보다 기대를 느끼게 되는 마법, 그래서 기꺼이 느린 길을 즐기게 되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