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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리 Mar 30. 2024

나의 엄마를 '너네 엄마'라고 부르던 그 남자.

결혼 전부터 엄마는, 내가 5년을 넘게 만난 나의 전 남자 친구이자 전 남편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다. 이유야 너무도 당연해서 그것들을 열거하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엄마에게 있어 내가 얼마나 귀하게 키운 딸인지도 알고, 아무리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됐어도, 알고 보니 나이도 나보다 많은데 빚이 있는 남자에게 선뜻 보내기가 쉽지 않으신 게 마땅했다. 다가 그는 나에게도 모자라 우리 가족에게도 숨 쉬듯 거짓말을 했다가 금방 들통이 났다. 예를 들면 언제까지 돈을 얼마나 모아서 결혼을 하겠다고 해 놓고, 알고 보니 주식을 해서 날려 먹었는데, 엄마 앞에선 저희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 자기를 무시하지 말라 뭐 그런 여러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는 것도 관이었다.


 멍청했던 나는 그가 아니면 비혼으로 살겠다고 선언했고, 엄마는 오랜 고민 끝에 그와 나에게 조건을 내건 결혼을 조건부로 허락하셨다. 즉,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1년을 열심히 돈을 모아 빚을 갚은 후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인 신고 후 우리 집과 전 시댁이 사는 도시로 다시 이사 올 계획을 짤 것. 그건 결코 엄마를 위한 계획이 아니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꼭 그렇게 해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결혼식을 치렀다.


  마음이 약한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럽다고 예비 사위의 예복을 손수 맞춰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소파를 사주시고, 신혼여행에 보태라며 현금도 챙겨주셨다. 반대로, 전 시어머니께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이건 내 의지도 있어서 원망하진 않는다. 내가 결혼 후 시댁에서 받은 건, 결혼 후 반찬 할 때 쓰라고 보내 주신 소금, 후추, 간장 등 각종 조미료와 생일 선물로 받은 김장 김치 5 포기가 담긴 통이 다였다. 물론 그건 대부분 그가 다 먹어치웠다.(...)


럼에도 나는 내가 받지 못하는 것들에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애초에 노후 준비도 안 된 시댁에게 무언가를 받기보다는 드려야 할 것들을 선택했던 결혼이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전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태도를 바꿨다. 우리 가족을 만나기만 하면 특히나 엄마에게 매우 시큰둥해하고,  친정에 다녀오면 나에게 자꾸 짜증을 냈다. 자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그렇게 자기 특유의 뛰어난 언변으로 설득해 놓고, 막상 엄마가 자기 약점을 드러내는 조건을 내거니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나와 결혼하기 위해 그 조건을 수락했던 건데, 이제 와서 대체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결혼 전부터 나에게 언제든 빠져나올 '구멍'을 준비 주신지도 모르겠다.



결혼식 날, 연분홍 한복을 입은 엄마는 너무 곱고 예뻤지만  얼굴이 어둡고, 억지웃음이 가득했다. 신부입장을 하고는 인사할 때 잠시 느끼긴 했었는데 나중에 받은 본식 영상 스냅사진과 영상을 보니 엄마는 너무 슬프고 우울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올린 채 앉아 계셨다. 그걸 보고 한 동안 엄마를 뵙기가 불편하고 죄송했다. 나는 엄마를 꽤나 좋아하고 엄마 말을 잘 듣는 K 장녀인데, 결혼만큼은 내 맘대로 하게 해달라고 엄마의 반대를 처음으로 뿌리치고 나온 것이다. 내가 사랑하니까, 내 가정이니까, 내가 고른 사람이니까, 엄마보다 내가 이 사람을 더 잘 아니까 괜찮다고 회유하면서 그렇게 구절절 락을 구해 놓고, 그런 슬픈 얼굴로 딸의 결혼식을 지켜본 엄마에게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사실 힘들다고 징징 댈 순 없었다.


하지만 60년 이상을 산전수전 겪은 엄마의 눈은 정확했다. 엄마는 그 사람이 자꾸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하고 금전적인 문제가 자꾸 생기는 게 이상하다고 반대를 하셨데, 그 이유를 하나둘씩 알게 될 때마다 머릿털이 바짝 섰다.


엄마의 예상보다  그 사람에게는 문제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그는 결혼 전에 우리 가족을 볼 때마다 늘 지극 정성으로 대하곤 했었다. 결혼 전날까지도 능청스럽게 다정한 예비 사위였던 그는 정작 결혼을 하고 나서는 곧바로 태세를 바꿔 우리 엄마가 자기를 무시한다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엄마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내 원가족 때문에 내가 꾸린 새 가정을, 배우자를 미워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다만 가족으로 여기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그와도 힘들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길을 잃 헤매는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니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 전 남편 때문에 내가 힘든 게 싫었고, 남편은 그런 엄마가 자신을 무시한다고만 여겼다. 나는 사실 남편을 이해하고 싶은 쪽을 선택했지만, 그런 나르시스트의 마음 같은 걸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폭언을 하고 물건을 던진 일도 그때는 가족에게도, 남에게도 선뜻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엄마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나는 어엿한 성인이고, 엄마에게 반기를 들고 투쟁해서 스스로  선택한  가정을 지켜야 했으니까. 매일 그와 다투고 밖에 나가서 그와 다정한 부부인 척을 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남에게 내 얼굴에 침 뱉기남편 욕을 하는 괴롭고 힘들었다. 


이사를 한 날, 그리고 전 남편의 배신으로 우리의 관계가 끝난 날, 엄마는 분노와 슬픔을 참고 오히려 날 달래면서도 자신은 몰래 숨어서 우셨다. 그렇지만 너무 잘 됐다고 헤어져서 다행이고 고맙다고, 혼인신고를 안 해서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결혼 후 엄마랑 만날 때마다 엄마 눈에는 내 얼굴이 점점 상해 가고 있는 게 보여서 너무 속상한 마음에 잠도 안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갓난아이처럼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릴 때 엄마가 이혼한 게 나에게는 너무 마음의 상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내가 이혼하고 엄마에게 위로를 받고 조언을 듣고 있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죄송했다.


본가에 들어온 후,  나는 버티는 데 온 힘을 다 했다. 가족들에게 조차 이제는 괜찮은 척, 거지 같은 결혼에서 잘 탈출한 척했지만, 돌아서면 억이 무너지곤 했다. 샤워하다가, 밥 먹다가, 자기 전에 툭해면 우는 나를 엄마는 덤덤히 지켜봐 주셨다.  나의 하나뿐인 여동생도, 자신도 바쁘고 힘든 일을 겪는 와중에도 나를 지극 정성으로 챙겨줬다. ( 보고 있니? 진짜로 고마워)


는 왜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정작 옆에 있는 남편이라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메말라 가는 지도 몰랐는데, 2주에 한 번을 본 엄마는 매 순간마다 나의 고통스러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이런 거지 같은 일을 겪어보니 엄마는 나랑 비교도 못할 정도로 무지하게 대단한 여성이었다. 사업 부도로 처자식을 두고 혼자 외국으로 도망간 남자 이혼을 하고 혼자 나와 동생을 키워냈다. 그 와중에 온갖 궂은 일과  '싱글맘'이라는 따갑고 사나운 시선들을 받아내며 그렇게 자신의 아이들을 놓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왔다. 나는 혼자임에도 이렇게 헤어지기가 힘들었는데,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강했을까.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겪어봐야 남의 상처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는 악하고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바로 나라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신혼여행에서 나와 사이가 틀어진 직후부터 '너네 엄마'가 자기를 무시해서 나와 헤어지고 싶다고, '너네 엄마'가 이상해서 내가 이상한 거라고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너네 엄마가' '너네 엄마 때문에' 같은 패륜드립을 치며 나를 가스라이팅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고 엄마가 정말 무시를 했나 싶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자꾸 반복되는 '너네 엄마'에 나는 그가 생각보다 훨씬 제정신이 아니구나, 난 어떡하지 싶었다. 


헤어지고 나서 마지막으로 걸려온 전화에서 조차 그는 '너네 엄마'가 자기한테 어떻게 상처를 줬는지 다짜고짜 화를 냈다. 지가 잘 못해서 헤어져 놓고 여전히 남 탓 하는 건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이 돼서야 예의도, 더러운 속내조차도 숨기지 않는 고작 그 따위 남자에게 나의 엄마가 '너네 엄마'로 불리는 걸 참을 이유가 이제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와 틀어지고 한 번도 전 시어머니를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너는 대체 왜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싹수가 없고 예의가 없냐고 물으니 자기가 나보다 저급한 인간이라 그렇단다.


저 나르시스트가 자기 입으로 자신이 저급하다고 말할 지경이면 어지간히 참 바닥을 기고 있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리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마지막에라도 당당히 티를 내준 덕에 그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고, 내 삶의 어떤 것에서도 그와 엮이고 싶지 않게 됐다.



참 웃기게도, 이제 와서 의미 없는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를 향해 아무리 분노하고 가끔은 그를 죽이고 싶어도 절대로 그의 어머니를 '너네 엄마'라고 부르지 않은 나 자신이 새삼스레 대견 때가 있다. 덕분에 그가 나에게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건 단연코 지금껏 그에게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으리라 자부한다. 또, 그깟 칭찬 하나에 내 미련들이 하나 둘 사라져 줬으니 덤으로 고맙기까지 하다.


다만 '너네 엄마'였던 나의 엄마에게는, 이제라도  스스로 잘 사는 모습으로  보답해야 한다. 반드시 꼭 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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