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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리 Apr 07. 2024

벚꽃과 함께 찾아온 결혼 '기억일'을 떠나보내며.

달디 단 신혼 생활을 해도 모자란 때에, 나와 그는 결혼식을 올린 지 1년도 채 안되어 결혼 생활을 렇게 어이없게 마무리 지었다. 작년, 처음으로 맞은 결혼기념일은 그와 나의 별거 기간 속에서  쓸쓸하고  슬프게 지나가버렸다. 그날 퇴근 후에 혼자서 벚꽃이 만개한 산책로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서 얼음찜질을 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그와 함께 한 시간이나 추억들은 어떻게 해도 놓아지지 않았다. "추억은 힘이 없어요."라는 라마'내 이름은 김삼순'의 명대사가 자꾸 떠올랐지만, 왠지 나의 추억은, 우리의 추억은 특별하니까 힘이 있을 거라고 우겨봤던 것이다. 그러나 추억은 나를 사정없이 슬프게만 했다. 나는 별거 후에도 한 동안은 그와 함께 갔던 식당이나 공원만 지나도 과호흡이 찾아와서 그 근처를 모조리 피해 다녔다. 별거 중인 그도 나에게 괴로워서 함께 갔던 식당을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했었지만 역시나 그는 거짓말쟁이였다.  가 나와 함께 갔던 여행지와 숙소를 새로운 여자와 나 몰래 함께 가려고 했다는 걸 알게 돼서야 나의 아련한 추억 팔이도 장창 깨졌다.



나는 유난히 추억에 민감하고 약하다. 이런 부분을 잘 아는 친구나 가족들은 함부로 정을 주지 말고, 함부로 곁을 주지 말라고 자주 조언을 해줬는데, 나는 귀를 틀어막고 누구든 곁을 내줄만하니까 내주는 거라고 뻐겨댔다. 역시 직접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것도 내 약점이다.


올해 두 번째로 '그날'이 찾아왔다. 요즘 너무 일이 많아져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느라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그냥 또 살다 보니 그날이 왔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은 여전히 이상하고 조금 우울하지만 주저앉아 울지는 않는다. 나는 깨달았다. 의미를 부여한다고 정말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지나간 것이 내 발목을 휘감을 수는 있지만 힘주어 잡아당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았다. 급작스레 피어난 목련과 벚꽃이 참 예뻐서, 정신없이 바쁜 날이어서, 그래서 그냥 그럭저럭 괜찮게 그날을 흘려보냈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면 내가 먹고살만한가 보다 다시 나 자신을 먹여 살려야지라며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일에 집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으려 한다. 그가 누구와 만나던, 우리가 살던 신혼집에 내가 두고 온 가구들과 식기들과 찻잔들을 그대로 두그곳에서 그 여자와 동거를 하던, 회사에서 잘리던 알 바가 아니다. 다만 내 기억 속에서의 그는 여전히 다정하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미래를 약속했던 내가 좋아하모습으로 아직 남아있어서, 가끔 죽은 사람을 추억하듯이 그 잔상을 추모하며 슬퍼하는 것뿐이다.( 론 그가 또다시 내게 법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나를 다치게 하면 그때는 정말 내가 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아 둔 모든 것들로 온 힘을 다해서 그를 망가뜨릴 거라는 건 별개.)


당연히 아직 마음은 온전치 않다. 신혼이혼이라고 이름을 붙였지, 어느 누군가는 혼인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혼이냐는 이야기도 한다.

이혼이 아니라고 부정을 해도 사실혼 파기는 실질적으로나 그 무게 자체로도 나에게는 이혼 그 자체였. 상대가 그걸 가볍게 생각했고 결국 나를 배신했어도, 처음부터 신중하지 못했던 결혼이었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끝까지 노력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결혼 자체를 그냥 없었던 것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에게 여자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가 계속 앞으로 잘하겠다고 애원했더라면 나는 차마 그와 헤어지지 못했을 텐데. 용케도 그의 선택 덕에, 마음 약한 나는 이 결혼을 끝낼 수 있었다. 어쩌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는 건 아직 내가 완전히 괜찮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매일 나 자신에게 운이 없었고, 사기당했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기댄 나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의 과오조차도 이제는 내가 직접 보듬어야 한다.


기댈 곳이 없어졌지만 나를 돌덩이처럼 짓누르는 곳도 사라졌으니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수수하지만 러모로 굉장했다, 나의 신혼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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