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산악부에서 등산을 배웠다. 암벽 장비와 야영 장비 그리고 식량 등을 넣은 배낭을 꾸리고, 길 안내와 등산 속도를 올리는 역할을 맡은 선배가 제일 선두에 서고 후배들은 오직 앞사람 등산화 뒷굽만 쳐다보며 따라가기 바빴다. 지금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오직 행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 옮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젠 주변 경치도 감상하고 힘들면 쉬어가기도 하며 등산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우리네 삶도 이와 닮지 않았나 싶다. 경쟁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앞사람 따라가기 급급한 시절도 있었고 때론 내가 뒷사람을 안내하며 걸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삶은 각자에게 허락된 길의 끝을 알지 못하고 걸어가는 산행과 닮았다 생각한다.
그 인생길 위에서 때론 꽃길도, 가시밭길도, 절벽도 만나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 의지하며 걸어갈 수 있는 길동무는 신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물의 소중함은 선물을 잃고 난 후에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 중 최고라 생각한다.
이제 나는 내게 남은 길을 길동무 없이 오롯이 홀로 걸어가야 상황과 맞닥뜨렸다. 내 아이들은 나의 길동무가 아니라 내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이유이자 길동무가 내게 남겨둔 나의 미션이다. 언젠가 나도 내게 준비된 길을 마감하는 날 길동무에게 자랑할 이야깃거리이기도 하다.
가끔씩 대학생 딸들의 미래의 어느 날 있을지 모를 결혼식 장면을 상상해 본다. 엄마 없는 결혼식 장면을 그려보며 슬픔과 함께 내 역할을 다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론 돈을 많이 벌어 아이들이 더 이상 돈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유보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 즐거운 상상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밀려드는 우울감, 피로 그러나 왜 갑자기 우울해지는지 내 감정 변화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며칠 전 홀로 운문산을 올랐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은 매우 미끄러웠으며 ‘왕년에 내가’라는 근자감으로 처음 가는 산임에도 아무건 준비 없이 대략적인 코스만 머리에 넣고 무작정 출발한 터라 오직 발 앞만 쳐다보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산을 오르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은 턱에 차 옴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오롯해지는 것을 보며 나의 남은 인생길도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을 오를 때 처음부터 저 멀리를 보며 걷게 되면 ‘언제 저 길을 다 가나’ 하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생각만큼 길이 줄어들지도 않아 곧 지치고 만다. 오직 내 발 앞 만을 보고, 호흡에 집중하며 가끔씩 눈을 들어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만 체크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이날의 산행을 통해 내 마음의 우울감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너무 멀리 바라보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
오늘 한발 한발에 집중하다 보면 내게 준비된 길의 끝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때 먼저와 기다리고 있을 나의 길동무에게 잘 살고 왔노라고 한판 자랑질하며 끝없이 펼쳐진 초장을 두 손 꼭 잡고 한없이 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