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선배 아들 결혼식이 있어 홀아비 몸보신이라도 할 요량으로 뷔페 음식을 많이 먹었더니 조금은 과했던 모양이다. 저녁 무렵까지 배가 벙벙하여 배도 꺼줄 겸 동천강으로 나갔다. 빨리 뛰면 배가 꼬일 것 같아 천천히 달렸다. 5킬로미터만 생각하고 천천히 뛰었으나 욕심이 생겨 달린 것이 21.4킬로미터를 달리고 말았다.
3~4년 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1킬로미터도 한 번에 달리지 못했던 것이 아내를 떠나보내고 살기 위해 무작정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마라톤 하프 거리를 한 번에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학 산악회를 통해 등산을 배우긴 했으나 삶은 내게 산에 자주 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등산 역시도 3~4년 전부터 동네에 있는 문수산부터 오르기 시작하다, 아내를 잃고 친구들이 불쌍한 홀아비 산에나 가자며 함께 영남알프스 9봉과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이젠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올여름 통도사환종주구간 18킬로미터 구간을 혼자 무작정 가서는 8시간 반 동안 파김치가 되기도 하고, 10월 23일엔 송정저수지에서 동대산까지 15킬로미터 산길과 임도로 된 길을 뛰고 걸으며 2시간여 만에 완주하기도 했다.
처음엔 가볍게 운동이나 할 요량으로 시작했던 것이 갑작스러운 아내와의 이별을 겪으며 그나마 달리기나 등산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주저앉고 말았을 것 같다.
인간이 걷거나 달린다는 행위는 신체적 장애가 없다면 가장 기본적이고, 특별한 훈련이나 준비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 행위에는 어떠한 꼼수나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많고 적음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오직 자신의 몸만으로 각자의 한계 범위 안에서 평등하게 할 수 있다.
처음 한 발을 떼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나의 한계를 넘어 거리를 넓혀 나가면서부터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점점 더 큰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주변에서 내가 달린다면 첫 물음이 '얼마나 달리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몇 킬로미터를 달리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운동화를 신고 달려라고 말한다. 어려우면 걷다 달리기를 반복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거리를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머리로는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지만 내 마음은 바쁘기만 하니 가슴에는 전혀 와닿질 않았다. 그러나 달리기는 내게 축적의 시간을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아내와의 추억이 제일 없는 곳으로 홀로 이사를 오고, 학업을 위해 서울로 떠난 딸들의 희망을 아빠가 빼앗을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달렸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뭣하러'란 생각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힘 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던 날도 있었다. '왜'란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없어 이불속에서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무작정 달렸다. 때론 '왜'를 몰라도 무조건 하다 보면 거꾸로 이유가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다.
홀로 걷고 뛰는 과정에서 나의 50년 생을 온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었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완전히 바꾸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한 첫발을 내 디뎠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도 가졌다. 희미한 안갯속에서 겨우 눈앞의 방향만을 더듬어 잡았다.
이젠 미약하고 작은 성공부터 하나씩 꾸준히 이루며 달려 가려한다.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을 쳐다보며 조급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나의 힘으로, 나의 페이스로, 나의 길을 달려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등산과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이고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