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사찰들은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상전을 앞에 두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는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내가 살고 있는 속세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넌다는 행위는 같으나, 각 사람마다 강 건너의 세상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간절한 소망을 안고 부처님께 소원을 들어달라 건너가는 아낙, 연인과 함께 행복한 꿈을 안고 건너가는 총각, 끝없는 절망 속에서 세상과 결별을 고하며 건너는 이. 그들 각자의 강 너머 세상은 다를 것이다.
성경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살이 하던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건너가는 스펙터클한 장면에 매몰되어 홍해를 건너가는 각 사람들의 심정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가는 그들 속엔 적극적인 의지로 건너가는 사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왔다 여차하면 다시 애굽으로 도망가려고 눈치만 보던 사람, 부모형제 따라 마지못해 따라왔던 사람 등등 각자의 마음은 모두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만은 같았을 것이다.
군대를 끌고 루비콘강을 건넌다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이 되고, 무장해제로 로마에 들어간다면 죽음이 그를 기다리는 상황을 앞에 둔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강을 건넜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강을 무수히 넘어가고 또 넘어간다. 때론 희망으로 심장이 터질 듯 부풀기도 하고, 때론 두려움과 좌절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한다. 그러나 대나무가 자라며 마디를 이루듯 우리네 삶도 하나의 강을 건너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조금 익숙해져 편하게 살만하다 할 때면 어김없이 삶은 우리에게 다시 강을 건널 것을 요구한다.
강 건너의 세상. 미지의 삶, 두려움, 편안함과의 이별, 도망가려 해도 건너온 강을 다시 건너갈 수 없으니 싫든 좋든 되돌아갈 수도 없다.
강 건넘의 결정이 카이사르와 같이 자기의 판단으로 결행한 사람과 내 의사와 상관없이 떠밀려온 사람이 강을 건너온 후 처할 상황은 너무나 다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강을 건너왔는가 와는 별개로 현 상황을 해결해줄 유일한 방법은 오직 자신뿐이다.
두려움에 떨며 주저앉아 울고 있든, 이곳저곳 방법을 찾아 헤매든, 신을 찾아 호소하든 오직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7월 말 언양 통도사 뒤편 영축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통도사환종주 20km 구간 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생각할 것도 많고 현재의 어려움을 다른 어려움으로 잊고 싶은 마음도 있어 무작정 혼자 떠난 산행이었다. 준비가 안된 탓도 있고, 한여름이라 사람이 없기도 하여 죽을 고생을 하며 완주를 했다. 이때 내게 든 생각은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는 1,000m 첩첩산중에서 주저앉는다면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 다리를 질질 끌고서라도 내 힘으로 이 산행을 마쳐야 한다'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두 발로 들어갔으며,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도 자신의 힘으로 로마로 입성할 수 있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 탑 위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의 머리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탑 위에 앉아있는 불상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무언가 어색하다. 보통 산을 등지고 앞에 펼쳐진 전망을 조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 하지만, 이 부처님은 산을 옆으로 비켜 앉아 멀리 서편하늘을 보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저 피안의 서역 정토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맨몸으로 걸어도 숨이 찰만큼 높은 이곳에 탑을 쌓기 위해 온 염원을 다한 석공은 현재의 고달프고, 두렵고, 힘겨운 삶을 희망의 땅 서역을 바라보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을까.
오늘도 두려움의 강을 건너 울고 있는 나와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