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이별
파도가 연이어 때리고 또 때리고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호수 바닥이 완전히 뒤집히고 나서야 호수가 잠잠해지듯, 이제 잠잠히 나를 돌아본다.
착한 아들로, 성실한 남편으로, 자상한 아빠로 불려야 되는 줄 알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름 지어진 나로 살아야 하는 줄 알던 때도 있었다.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직장에서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회사 직책으로 불리는 내가 나의 참모습인가 하던 때도 있었다.
사회단체, 동창회, 정치단체, 봉사단체 등등 이곳저곳 발 걸친 단체가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던 때도 있었다.
하룻밤 몇 팀과 술자리가 뒤엉킨 삶이 잘 사는 것인 줄 알던 때도 있었고, 현관에 매달린 우유랑 같이 들어간다는 말을 서로 자랑삼아하던 때가 있었다.
18번 노래 하나쯤 가수처럼 폼나게 부르는 게 멋이라 여기던 때도 있었고, 이런 나를 참아내는 아내의 희생이 당연하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 길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다 폭풍우를 만나 멈춰 선 지금, 그간의 나를 잠잠히 돌아본다.
변극 배우처럼 겹겹이 둘러쓴 가면을 한 겹 한 겹 벗겨내고 나의 맨 얼굴을 찾아보련다.
시절이 다함에 소용도 함께 다한 가면, 나조차 나인 줄 알고 오랫동안 써온 가면 이 모든 가면을 벗으려 한다.
관성으로 타성으로 그렇게 그렇게 살아온 그 모든 익숙함으로부터 이별을 고한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너희 두 날개로 힘차게 둥지를 날아오르고 나면 더 이상 이 둥지를 돌아보지 말라'라고 말했다. 이는 지금의 아이들이 있기까지 엄마의 수고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를 말함이요, 나의 독립선언이기도 하다.
내게 앞으로 허락된 생은 길어야 20~30년.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나로 살아가련다. 가족 속에서, 사회 속에서 서로 기대고 기댐 받던 나로부터 단독자인 나로 설 것이다.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 매일매일 성장할 것이다.
나를 찾는 과정 속에서 진정 나답게 사는 법을 알아 가련다.
나 돌아갈 어느 날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처럼 노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