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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제는 편히 쉬어 카레타

[어느 날 갑자기 선수가 된 나의 이야기]

by 나영

평소와 같이 이른 아침 차를 타고 마사회를 가던 중 민경이한테 전화를 받았다.

“언니.. 카레타가 죽었대..”

나는 잠결에 들은 거라 내가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장난치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카레타 마방으로 갔다.

카레타는 마방 바닥에 누워있고 머리부터 다리 끝까지 말 옷으로 덮혀져 있었다.

잘못들은 것이길 바랐던 나의 소망은 저 멀리 날아가고 카레타의 차가운 시신만 내 앞에 놓여있었다.


카레타는 내가 마사회에 처음 들어와서 말들 이름을 외울 때 가장 먼저 외웠던 말이었다.

갈색 얼굴에 힐끔힐끔 있는 흰색털들은 카레타만의 무늬였다.

첫 장애물 코스도 카레타랑 뛰었다. 다른 교관님께서 저 말 누구냐고 물어볼 정도로 내가 아무리 못해도 다 뛰어줬다.

숄더인도 잘하고 장애물도 잘하고 구보 반동도 좋고 착한 말이었다.


나는 카레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있는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애들이 모두 왔을 때 다 같이 가서 얼굴을 보고 인사해 줬다.

평온하게 눈을 감고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카레타를 보는 것 같지가 않았다.

다시 한번만 더 카레타의 깊고 진한 눈망울을 보고 싶었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아픈 곳 하나 없었고 착하게 운동도 잘해줬다. 맛있게 밥을 먹는 것까지 확인하고 집에 왔는데...

카레타가 아프다고 보낸 신호는 없었는지, 카레타는 아프다고 했는데 내가 무언가를 놓쳤었던 건지 어제 하루를 곱씹어봤지만 알 수 없었다.

밤사이 혼자 세상과 작별하는 시간 동안 카레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했고,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들었을까?

카레타의 길고도 짧은 인생에 마지막 1년을 함께한 나는 그 순간들 속에 존재했을까?

우리는 사는 동안 친구를 만들고 가족을 만들지만 카레타에게는 누가 있었을까?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 외로웠을까?


카레타는 교관님 여러 명이서 들어서 트럭에 실어 떠나갔다.

다른 말들이 카레타가 옮겨져 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다른 쪽으로 옮겼다. 카레타를 보면서 얘네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밤사이 아파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결국 세상을 떠난 카레타를 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옆 마방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카레타의 마지막 숨결을 들은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이 아플 때도 아무도 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겁을 먹었을까?


카레타의 빈 마방은 너무 크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사람과의 이별, 동물과의 이별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나에게 카레타와의 이별은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이별이었다.

지금은 넓은 잔디밭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 모습과 똑같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지만 지금은 햇빛을 즐기며 자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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