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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처음으로 말한테 뒷발을 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선수가 된 나의 이야기]

by 나영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는 말들을 관리해 주기 위해 말을 배정받았다. 나는 흰여울이라는 말을 배정받았다. 이름만 듣고 하얀 말을 기대했지만, 검은색 말이 나타났다. 흰여울을 샤워시킨 후 풀을 먹이러 규사 앞으로 내려갔다. 이때까지 흰여울은 천사처럼 얌전했다.


풀밭 한구석에서 마음에 드는 풀을 다 먹고 나니 흰여울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에 놀라서 뒷발을 차고 걸음이 빨라졌다. 처음 겪어본 상황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너무 무서웠다.


누군가라도 나를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그 넓은 곳에 나는 혼자였다. 여기서 말을 놓치면 다른 말들이 다칠 수도 있고 아니면 경마장으로 내려갈 수도 있어서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훅 나가는 바람에 리드 로프 끈이 길어졌고 흰여울 혼자 원을 돌면서 뒷발을 차다가 내 허벅지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맞은 순간 시야가 하얘졌는데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직 말을 놓치지 말고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리드 로프를 꽉 잡고 그냥 무작정 수장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수장대에 묶어놓고 나니 그제야 허벅지의 통증이 밀려왔다.


나중에 보니 정중앙으로 맞아서 허벅지 중앙에 편자 모양으로 빨갛게 자국이 남더니 점점 파래졌고 피멍이 들었다. 타투한 것처럼 한 달 내내 허벅지에 편자 모양의 멍이 남아있었다


아프긴 했지만 뼈가 아닌 허벅지를 맞아서 크게 다치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었고 완전히 새로운 경험

이었다.

말을 놓치지 않아서 더 큰일이 생기지 않은 걸로 만족하고 다시는 운동 안 된 말을 마방 굴레만 씌어서 풀 먹이러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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