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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Aug 12. 2024

[2024 독후기록 54]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이정우(前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한겨레출판, 2024년 5월, 볼륨 548쪽.



덥습니다.  정약용 선생님이 [여유당전서]에서 제시한 ‘더위를 물리치는 8가지 멋진 일’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만,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수박 같은 과일 먹으면서 책을 읽는 일도 더위를 잊는 좋은 방법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휴가 때 캐리어에 담아 함께 여행을 떠났던 책입니다.


이정우 님은 1950년 대구生. 경북大에서 평생 경제학을 가르친 교수님입니다.  2002년 8월, 제16 대 대선을 앞두고 우연한 기회에 노무현 후보와 연을 맺게 되어, 노무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과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역임하신 분입니다.  공직에 나가 있던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퇴임해 강단으로 돌아온 2005년 7월까지 약 1,000일간의 참여정부 기록입니다.  원래 게을러(본인 이야기) 일기도 쓰지 않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첫날부터 일기를 쓰게 되었고, 이렇게 쓴 일기가 두꺼운 대학노트 열 권 분량이 되었답니다.  회의 때 사용한 업무일지만도 수십 권인데, 업무일지가 아닌 일기장 기록에 의거한 참여정부 초기 2년 반에 대한 정책과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548쪽에 이루는 매우 두꺼운 책입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아닌 정부 운영과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 정치에 별반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면 굳이 찾아 읽지 않을 그런 類의 책입니다.


총 5部로 구성되었습니다.  1部는 ‘참여정부의 탄생’으로 노대통령 후보자 시절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첫 만남에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어드바이스 보단 후보자의 “말을 줄이라”는 충고를 했다고 하네요.  토론하기 좋아하는 노대통령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2部는 ‘천하대란의 시대’라는 소제목 하에, 북핵 위기, 카드 대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꾼다”는 화물연대 파업, 은행 파업, 철도 파업, 전교조의 나이스 시스템과 관련한 대정부 투쟁, 대선 때 우군이었던 영화계와 갈등을 빚은 스크린 쿼터 축소, 심각한 경기 불황, 부동산 폭등 등 하루도 편하지 않았던 날에 대한 기록입니다.


3部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개혁 또 개혁’을 추진한 내용이,  4部에서는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바라보는 ‘참여정부의 功過’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5部에서는 ‘못다 한 이야기들’이라는 소제목으로 개인적인 소회와 지난 역대 대통령들과 인상적인 인물 들에 대한 평가, 마지막으로 본인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간략한 자서전式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책실장이란 자리는 외교, 국방, 통일을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의 정책을 총괄, 조정하고, 대통령 국정과제라는 장기적 정책 과제 추진을 담당하는 막중한 자리입니다.  비서실장과 더불어 대통령과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자리인데요.  “20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기억이 가물거리고 지워지기 전에 객관의 눈으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생각되어 이 책을 내게 되었다”라고 서문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弱者와 正義를 우선하는, 세종, 정조와 같은 ‘학자 군주’라 노대통령을 평가합니다.  “역대 대통령中 단연 최고다.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나는 행운아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398쪽)며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법학 교수셨고, 서울대 경제학과 68학번으로 대학 3년을 마친 시점에 경제학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방황하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아담 스미스, 리카도, 칼 마르크스, 마샬, 케인즈의 5大 경제 古典을 원서로 사, 혼자 읽고서 비로소 경제학의 매력을 발견해, 평생 경제학과 함께 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인데요.  某방송에 나오셔서 자기를 폴리페서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폴리페서는 정권에 빌붙어 사익을 취하는 기생충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士大夫에 해당한다”라고 말합니다.  조정에 나가 정치할 때는 ‘大夫’로, 벼슬을 내려놓고 물러 앉아 있을 때는 다시 ‘선비(士)’로서 학문에 매진하는 사대부처럼, 폴리페서였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네요.(다른 목적을 가진 폴리페서와는 구분해야 할 분인 듯)


영국 런던大 정치학과 교수이자 권력 연구의 권위자인 브라이언 클라스(Brian Klass) 교수의 말로 독후기록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권력에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최악의 지도자는 권력에 집착하고,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462쪽).

현재의 누군가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지 않으시나요?


올해 54번째 책읽기.


#이정우  #정책실장  #이정우교수  #노무현과함께한1000일  #독후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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